위로 받을 자격
아버지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가슴 저 밑까지 따뜻해지는 위로도 받았고, 사막에 혼자 버려진 것 마냥 외로움에 떠는 순간도 겪었다. 걱정과 불안, 혼란 속에 갇혀있는 나를 전혀 알아봐주지 않던 그를 오히려 내가 위로하기도 했고, 내 불행을 자양분 삼고 싶어하는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오늘 그녀는 노인들이 이렇게 다쳐서 앓다가 그냥 가기도 한다,는 회괴망측한 문장을 내뱉았고, 나는 어쩐지 화보다는 포기의 마음이 더 빨리 오는 걸 느꼈다. 위로받을 자격이라는 게 있을까. 위로는 잠자코 기다리면 오는 걸까. 공감이 뭔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라는 걸, 서러워 울던 많은 밤을 지나고 나니 ..
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2019. 11. 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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