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엄마 일기

[+825] 아기가 주는 것

새빨간꿈 2014. 10. 12. 15:54


서효인의 {잘왔어 우리딸}을 다 읽었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이어서. 마지막 장은, 은규가 누워있는 잠자리 옆에서 넘겼다. 아기의 규칙적인 호흡은 나를 참 평화롭게 만든다.


오늘은 Y 가 종일 집을 비우는 날. 미용실도 가고싶고 목욕탕도 가고싶어서 붙잡다가, 그래 하루 잘 놀다 오소, 하고 보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개운해지던 걸. 그가 집을 비워준 덕분에 나는 은규랑 종일 붙어있는다. 아침 해먹이고 똥 싼 거 씻어주고 말대답해주며 설거지하고 점심 준비하고 둘이 시장 가서 과일 사오고 (오는 길에 벤치에 앉아서 바나나 한 개 까먹고) 점심 해먹이고 사과 깎아먹이고 졸린 거 같아서 재우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아기는 곤히 자고, 나는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사온 아이스 까페라떼를 마시며 망중한.


일터에 내가 참 좋아하는 샘이 있다. 나는 그의 명민함을 좋아하는데, 실은 그의 우울도 좋다. 결혼은 했으나 아기가 없는 그에게 아기와 같이 살기를 권해주고 싶은데 매번 참는다. 아기가 나에게 주는 것들을 설명하다보면, 내가 아기를 낳기 전에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그 서사들을 반복할 것 같아서. 근데, 참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참 좋다. 아기가 나에게 주는 평화가 있는데, 그게 참 말로 설명이 안된다.


시인 서효인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 가난한 배우자를 만나 가난하게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가난 속에 태어난 아기가 마침 다운증후군이다. 책의 삼분의 이는 어떻게 그 아기를 '다운증후군 아기'가 아니라 '내 딸'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쓰고 있다. 알고보니 아기는 참 예쁘고 곱고 귀하더라는 것. 그 아기가 무엇을 앓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 받아들임의 과정에서 서효인은 성장하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엄마를 안아주게 되며 무엇보다 아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 그 눈물겨운 과정들이 나에게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기가 나에게 주는 평화의 정체는 바로 이 과정들인지도 모르겠다.


불행감과 불안감에 빠져있다가도 정신을 차리곤 한다. 이렇게 이쁜 아기와 매일 만나고 눈 맞추고 안고 웃고 뛰어놀 수 있으니 나는 이걸로 참 좋다,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종종,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한 일 투성이라는 걸 알게 된다. 뱃속이 저릿저릿 하도록 사랑하는 존재가 생겨버려서 나는 더 단단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끔은 참 희안하다. 이렇게 나는 벅찬 마음으로 엄마가 되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