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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쯤 요가를 하고 나니 몸이 더워져, 잠깐 나가서 좀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잠들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숙소 불빛과 가로등이 있지만 밤의 숲은 어둡다. 서너 종류가 넘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물이 흘러가는 소리도 제법 크다. 바람이 살랑이는 게 기분 좋아서 입고 나갔던 얇은 점퍼를 벗었다. 몸으로 밤 숲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은. 가만히 눈 감고 숲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본다. 멀리 빛나는 별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분간하기 어려운 어두운 형체들. 조금 무섭기도, 조금 편안하기도. 그리고 밤 숲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

 

점심 먹고 들렀던 산골짜기 까페에서 만났던 여성 노인이 나에게 문득 물었던 그 문장이 생각난다. "여기까지 뭐하러 오셨어요?" 이 문장의 가운데 (혼자서) 라는 말이 숨어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노인의 딸인, 옆에 앉은 중년의 여성이 나에게 대신 사과를 했다. 그런 질문은 무례한 거라고, 대답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바로 말했는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여기까지 왜 왔을까요..." 

 

혼자 떠나는 이 여행이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떠나기 전 들뜬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출발해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 바로 저것이기도 하다. 나는 왜 혼자서 여기까지 왔을까. 아이도 남편도 두고 혼자 멀리 와서 나는 무엇을 구하려는 걸까. 혹 무엇이 결핍된 것은 아닐까. 혹 무엇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여행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도 늘 나를 따라다니던 질문. 

 

창을 열고, 음악 소리도 없이, 바람이 머리카락과 얼굴 뿐만 아니라 내 다리와 등까지 흐르도록 둔 채로, 차가 거의 없는 도로를 달리는 일. 양쪽으로 밭이 펼쳐진 작은 길을 달리다가 길 가운데 차를 멈추고 풀벌레 소리를 가만히 듣는 일. 우연히 찾아간 막국수 집에서 눈이 동그랗게 뜨이는 맛난 막국수와 감자전과 김치를 웃으며 먹는 일. 어둠이 점점 더 짙게 내리던 산길을 천천히 조심조심 운전해오며 깊은 그리움이 찾아드는 걸 맞이하는 일. 그리고 혼자 웃었다가 울었다가 혼잣말을 했다가 노래를 불렀다가 길을 계속 가는 일.

 

이런 순간들을 겪어보고 싶어 길을 떠났던 걸까. 결핍이나 문제 없이도 누구나 떠날 수 있는 거 아닐까. 혹 부족하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저런 좋은 순간들이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 괜찮지 않아도 사실은 괜찮은 거 아닐까.

 

그러고보니, 밤 숲이 나를 안아주는 듯 느낀 그 순간의 기운을 믿어보라고, 여기까지 나는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