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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보잘것없는여행

여행

새빨간꿈 2009. 9. 11. 16:35




이천 육년 이월, 어느 추운 날. 그 때 나는 씨스터들로부터 뭔가 에너지를 얻고 싶었던 거 같다. 주변의 몇몇 여자들에게 '떠나자' 제안했더니 딱 두명이 낚였다. 그래서 그 여자들이랑 히히덕 거리면서 떠났다, 돈 몇 푼이랑 바다를 보고싶다는 마음, 그리고 목적지에 대한 알량한 정보 내지는 환상 같은 걸 가지고서.

서울에서 동해가는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 - 예약해둔 렌트카를 몰고 바람부는 동해 바다와 경포대 구경을 하고, 차를 달려 묵호항에 도착 - 저녁이 내리는 항구에서 오징어, 쥐포 등등 사고, 회도 한 접시 먹은 후 추암으로 이동 - 화장실도 없는, 미닫이 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에서 파도소리 밤새 들으며 수다 떨다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보내고, 아침에 망상으로 이동 - 망상 바닷가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분위기 내고, 강릉으로 돌아와 손두부로 점심 - 렌트카 반납 후 버스 타고 귀경.

딱 1박 2일, 시간으로 따지면 서른 시간 남짓 되려나, 그런데 돌아와서 떠올려보면, 이 여행은 뭔가 꽉꽉 차있었던 느낌을 준다.




방바닥은 지글지글 끓지만 콧등은 약간 서늘했던 이 민박집 방 안에 누워서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파도소리가 바로 내 귓가까지 다가와서, 바다 저 멀리 어딘가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침엔 좁은 마당에 저렇게 밝은 햇살이 가득 들어와서 오렌지색 차양이랑 옐로우 평상 덮개가 참 이쁘게 제 빛을 낸다.


아침에 일어나 민박집 마당에서 작은 바닷가를 내려다보니, 아침 볕이 반짝거리는 바닷가에 갈매기들이 저렇게 날아다니고, 하늘 색과 바다색 둘다 여릿한 블루가 가득해서 어딜 봐도 그냥 다 그림인, 그런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바닷가 옆 딱 하나 있던 편의점에서 사발면과 김치와 햇반을 사다가, 해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나무 판자 위에다 차려놓고 세수도 안한 채로 아침 바닷가 만찬을 즐겼다. 공기는 차고, 바람은 서늘, 사발면 국물과 햇살은 따뜻했던, 각각의 온도들이 잘 어울렸던 저 아침 식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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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면 긴 여행 떠나는데, 요며칠 자꾸만 어딘가 놀러가고 싶다. 여행 준비며 논문이며 할일이 많이 많이 쌓여있는데, 자꾸자꾸 동해바다와 추암 저 민박집과 사발면과 후후 불면서 먹던 그 온도가 그리워진다. 심지어는 이제는 입을 일 없겠지, 하며 아름다운 가게로 보내버린 아래 사진의 후드 스웨터까지 괜히 다시 입어보고 싶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