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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법 ‘위법이지만 유효’
“재입법 안하면 강력한 저항 부딪힐 것”
학자들, 법 시행되면 ‘여론 공공성 파괴’
한겨레 이문영 기자/  김경호 기자
» 헌재의 미디어법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권한쟁의 심판에서 권한을 침해했지만, 법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내려진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야당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전국언론노조 관계자들이 판결 내용에 대한 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언론·시민단체 거센 반발

헌법재판소가 29일 야당의 신문·방송법 가결 선포 무효화 청구를 기각하자, 헌재 앞에 모여 있던 언론·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누리꾼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헌재 재판관 다수가 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 침해’를 인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했던 몇 분 전 분위기가 한순간에 급변했다. 여기저기서 “법이 죽었다”는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다.

‘언론악법 원천무효 100일 행동’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 결정을 비판했다.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헌재의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으로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며 “헌재 결정을 정부·여당이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해 법안을 다시 만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야당과 시민사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정부와 한나라당이 자행해온 정권의 방송장악, 미디어 자본시장 재편의 모든 불법적·초법적 행위들을 헌재가 정당화했다”며 “헌재 스스로 정치권력의 하부구조로의 편입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언론개혁시민연대·민주언론시민연합·한국피디연합회도 각각 성명을 내어 ‘법 처리 절차는 위법이되 법 효력은 유효하다’는 헌재 결정을 “무책임하고 비겁하다”며 한나라당에 언론법 재논의를 촉구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절차엔 하자가 있다면서도 그 절차에 기초한 법은 유효하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냐”며 “국민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헌재가 정치권력엔 애매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민주주의는 뿌리 뽑힌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반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헌재 결정으로 미디어 산업은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환영했다.

언론학자들은 정부·여당 언론법 시행이 가져올 언론환경 변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정상윤 미디어공공성포럼 운영위원장(경남대 교수)은 “대기업과 거대 보수신문이 방송에 진입할 때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겠냐”며 “한나라당 언론법은 저널리즘의 최우선 책무인 사회비판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도 “정부·여당이 밀어붙인 언론법이 초래할 탈규제는 방송의 사기업화·상업화·탈정치화를 부추겨 한국사회 여론구조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남 전북대 교수는 “정치·자본권력에 장악된 언론의 여론몰이가 머지않아 공공적 여론 형성에 위기를 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한나라당 언론법의 핵심인 신방겸영의 폐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론시장의 민영화와 상품화”라고 비판했다.

‘100일 행동’은 향후 헌재 결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조중동 방송’의 현실화를 막는 데 운동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이우환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1987년 민주항쟁의 산물인 헌재가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지 못하고 사실상 승인해 준 이상 더는 존재 이유가 없다”며 “대 헌재 투쟁과 헌재가 용인해 준 ‘조중동 방송’의 탄생을 저지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조중동 신문에 대한 절독운동과 광고주 불매운동 및 ‘조중동 방송’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상품 불매운동에도 들어갈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