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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허전함

새빨간꿈 2009. 12. 8. 10:57

 

토론토 생활 십구일째 _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서울에서 다니던 학교에선 개강과 종강 시즌에 저녁 식사 모임을 하곤 했다. 우리 전공에서는 보통 돼지 삼겹살 파는 식당을 예약해서 저녁 식사를 함께 먹고 2차는 맥주집, 3차는 노래방, 4차는 소주집, 5차는 양주집 (3차부터는 옵션. 근래엔 2차 혹은 3차 정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뭐 이런 식으로 저녁+밤을 음식과 술로 채우곤 했었다.

여기선 개강은 잘 모르겠고, 종강 시즌엔 전공이나 센터별로 포트락(pot-luck) 파티를 한다.
오늘은 내가 속해있는 센터(CWSE: 교육에서의 여성연구 센터)와 양이 초대받은 CIDEC(비교 국제 발전교육 센터)의 포트락 파티가 있었다. 우린 파트너를 데리고 와도 된다는 초청장을 받고 두 센터의 종강 모임을 점심과 저녁, 차례로 참여했다.

각자 조금씩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는 포트락 파티에 뭘 가져가야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외국인도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며 뭔가 한국적인 음식으로 '계란말이'를 선택했다. 당근과 피망을 잘게 썰어 볶고 계란에 함께 후라이팬에 지진 다음 예쁜 모양으로 썰기,를 약 오십분간 했더니 아래와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간만에 요리다운 요리를 해서 결과물을 가방에 싸들고 센터에 갔더니 사람들은 쿠키나 샐러드, 삶은 당근 등 비교적 간단한 조리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가져왔더라. 록산나 교수가 주문한 피자가 도착하자 파티가 시작됐다. 난 내가 만든 계란말이를 아무도 안먹을까봐 좀 전전긍긍했다.

사람들이 모이고 파티가 시작됐는데, 다들 둘러앉아서 짧은 소개의 시간이 지나자, 다들 자유롭게 음식을 자기 접시에 퍼담아서 그걸 먹으면서 삼삼 오오 대화를 시작했다. 영어가 낯설 뿐만아니라 여기 사람들과 문화도 낯선 나와 양은 한동안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다른 사람들이 침 튀기며 하는 대화를 잘 들리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들었다. 알코올을 좀 마시면 영어가 더 잘될까 싶어서 레드 와인을 한 잔 마셨는데, 그것때문인지 오늘따라 영어가 더 안들린다. 어색한 표정으로 으흠, 으흠,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가끔은 대화에 참여도 했다가... 그렇게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다행이, 센터를 나오면서 보니, 나의 계란말이 접시가 거의 다 비었다. 영어는 안들려도 내 요리는 사람들에게 반겨졌다 생각하니, 씁쓸했던 마음이 조금 위로 되었다.ㅎ





저녁 땐 CIDEC의 포트 락 파티에도 들렀다. 거기 갔다가 CWSE의 전 센터장이었던 안젤라 마일즈(Angela Miles) 교수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현재 안식년으로 학교를 떠나 있는데, <캐나다 여성학 저널>의 편집 위원직을 맡고 있어 오늘 열리는 회의 참석 겸 학교에 들렀다고 한다. 안젤라,라는 이름답게 그는 천사처럼 친절하고 따뜻했다. 말이 잘 안통해도 그의 인격이나 마음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진심으로 대해줬다. 안젤라 교수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몇몇 음식을 집어먹다가 집으로 왔다. 귀가길엔, 짐짓 오늘 하루의 영어 고문(!)과 새로운 문화 탐방의 수고를 위로라도 하기 위해, 리쿼 샵에서 맥주를 두 캔 사왔다.
배부르게 먹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영어 듣기, 말하기 공부도 실컷 했지만, 맥주 두 캔으로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공허감이, 그런데, 조금 있다. 그리고 이게 대체 뭔지는 아직 명확하게 잘 모르겠다.



오늘은,
아침기도 했고, 영어공부는 조금 하다 잘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