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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에너지

새빨간꿈 2009. 12. 22. 04:07


나는 스스로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꽤 오래 공부를 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기질인 건지,
요즘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내가 에너지 양 자체가 많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토론토에 함께 온 양은, 그를 알고 지낸지 8년 여만에 처음 알게된 건데, 에너지가 참 많다.
주말이나 휴일엔 집에서 쉬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걷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무가지, 유가지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영어로 된 신문을 읽고
광고판이나 티비 프로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토론토 시내 지도도 열심히 봐서 뭐가 어디 있고 어떻게 가보면 되는지 머리 속에 저장해두고,
여기 저기서 열리는 행사들도 미리미리 알아봐서 스크랩한다.
서울에 있을 땐 이 사람 저 사람 이 모임 저 모임 만나는 사람도 많고 개입된 일도 많아서
그 많은 에너지들이 분산되는 반면, 여긴 사회 관계도 별로 없고 공부 외엔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토론토 주변 환경에 대한 탐색으로 에너지가 집중되는 것 같다.

가끔 가보는 블로그 주인공인 어떤 언니는 네살 된 딸과 돌 지난 아들을 키우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틈틈이 피아노를 배우고 사진 공부를 한다. 둘째 아이 낳기 전에는 스페인어 시험도 봤다.

작년 겨울, 인도에 갔다가 친구가 된 ㅈㅇ이는 임신 중에도 영어 공부와 자원 활동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꾸준히 나가더니 함께 글 공부 했던 여자들과 동네 잡지를 뚝딱 만들었다.
얼마 전엔 만삭의 몸으로 사박 오일간 좌선 수행을 하는 명상 수련도 다녀왔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에도 요가 다니고 병원과 조산원 다니면서 아이 낳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내 일상의 에너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논문 쓰는 일, 다음 학기 수업 청강할 것 준비하는 일, 밥 먹고 자고 씻는 일 등으로도
내 에너지가 늘 딸리는 것 같은데. 쩝.

에너지가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무엇엔가 깊이 열중하고, 몸을 편하게 두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내가 '좋은 것'이라 여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에너지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극을 받고, 때론 질투도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