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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육십일째 _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오늘은 간만에 선련사 오후 법회에 갔다. 오랫만에 파란 눈 고수 법사님 만나니 좋았는데, 어제 마신 맥주 때문인지, 낮게 집에서 너무 열심히 녹취 작업을 하다가 가서인지, 법회 내내 졸았다. 다들 고요하게 명상하는데 졸면서 경련까지 막 했다.ㅋ 그나마 다행인 건 법당이 어두컴컴 했다는 거. 그래도 아마 다들 알았을 것 같다...ㅎ

법회 끝나고, 전에 먹었던 '블루베리 크림치즈 브라우니'를 혹시 살 수 있을까 하고 잠시 걸어서 켄싱턴 마켓(Kensington Market)에 가봤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내 사랑 '
My Market Bakery'도 간발의 차이로 문을 닫고 있었다. 가게 유리 밖에서 내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침을 꿀꺽 하는데, 가게 마감하고 청소하고 있던 언니가 빙그레 웃는다. 나 말고도 이렇게 간발의 차로 늦어서 동동 거렸던 사람들이 있겠지, 싶다. 이렇게 헛물을 키고 정신차리니, 해는 지고 날씨는 추워지고 배는 무지 고프고. 해서 서둘러 찾아간 까페, '하늘 나라의 완다네 파이.'


추운 날씨에 떨다가 들어가서 그런지 손님이 없는데도 까페 안이 포근했다. 따뜻한 샌드위치와 슾, 시나몬과 설탕이 듬뿍 발린 빵 한조각을 주문하는데, 일하는 사람들 표정이 밝아서 좋다. 자리 잡고 앉으니 잠깐 와서 슾의 맛을 보란다. 마음에 안들면 안시켜도 된다는 의미. 얼른 가서 한 숟갈 먹어보니 맛있다. 그읃~ 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더니 자기도 기분 좋은지 커다란 사발 가득 슾을 담아 내온다. 버섯과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도 깔끔하고, 디저트로 주문한 빵도 살짝 데워줘서 맛난다. 모두 이 까페에서 만든 것들이라 그런지 정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간단한 저녁 식사지만 따뜻하고 친절하고 맛난 음식을 주니 대접받은 기분이 든다.



토론토 온지 두달 만에 단골로 가고 싶은 곳이 두 군데 생겼다. 블루베리 크림치즈 브라우니를 파는 'My Market Bakery'와 여기, 'Wanda's Pie in the Sky.'  두 곳 모두 켄싱턴 마켓에 있다. 정성스러운 음식을 제공하는 곳에 자주 가서 거기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다. 그리고 토론토에서 사귄 친구들도 여기 데리고 오고 싶다. 돈과 음식이 교환되는 공간을 넘어서, 여기서 뭔가 괜찮은 걸 서로 나눌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가 생긴다.

저녁 먹고 도서관 가서 두 시간 공부하고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조금 피곤하지만, 이런 일요일도 괜찮다, 싶은 마음이 든다. 불과 두달 전, 여기 처음 왔을 땐 춥고 음울하고 가라앉아 있는 토론토의 겨울이 싫었는데, 이젠 가끔 이런 차분함 덕분에 읽고 생각하고 쓰고 공부하기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여기 오래 머물기는 싫지만, 겨울 지나고 봄이 되고 나면, 어쩌면 지금을 꽤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싶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