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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成道齋日

새빨간꿈 2010. 1. 25. 03:20


토론토 생활 육십오일째 _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오늘은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도를 깨우쳤다는 날이다. 
'저 벼랑에서 떨어져 바위에 부딪혀 죽는 한이 있어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던 석가모니는 깊은 선정에 들어, 드디어, 깨달았던 날, 성도재일.

지난 해 이맘 때쯤 나는 인도에 있었다.
그냥 거기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떠났던 길이었는데,
거기서 붓다의 태어남과 깨달음과 가르침 그리고 죽음의 길을 보았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드가야의 그 나무 아래에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불교 신도들이 기도하고 절하고
머리를 맞대고 입을 맞추고 있을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보드가야에서 나는 맛있는 짜이와 길거리 과자를 사먹었다.
시장을 한참 돌아다니고 물건들을 구경했는데 구체적으로 뭘 하면서 시간 보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보드가야를 떠나는 버스에 올라서야, 붓다가 깨달음에 이르렀던 그 순간을 상상해봤던 것 같다.
나도 붓다처럼, 괴로움 없이 사는 법을 알 수 있게 될까. 모든 사람은 붓다의 순간을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 선련사에서도 성도재일을 맞아 명상 법회를 한다길래 가봤다.
저녁 8시에서 10시 반까지, 30~40분간의 명상을 세 번 반복해서 하고 예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어가 모국어인 서양 사람들과 함께 명상하고 예불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지만,
긴 시간 명상하면서 이런저런 내 마음들을 잘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도 인도로 떠났던 때처럼 아프고 괴롭고 후회스럽고 슬픈데, 언젠가부터 내가 그 마음들을 자꾸 억누르고
있다는 걸 오늘 명상을 하면서 알겠더라. 좀 많이 울었는데 흐느끼거나 북받히는 눈물이 아니라
울고 나니 개운하다.

내가 종교를 갖게 될 거라고는 생각 안해봤지만, 만약 갖는다면 그게 불교일 것 같기는 했다.
불자가 되어 살면서 좋은 점은 지금 이순간의 감정들, 고통들이 흘러가버린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하듯
모든 고통도 변하고 사그라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흘러가버리고 사라져버릴 것이라서
더 소중하게 모든 순간을 느끼게 되는 역설도, 요즘에서야 조금씩 맛보는 즐거움.


오늘은 아침기도와 필라테스(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