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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육십구일째 _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북미에서 가장 왼쪽 편향이라 소문난 여기, OISE를 처음 구경 온 날,
내 눈길을 확 끌었던 건 사실, 아프리카에서나 볼 것 같은 컬러의 두건을 쓴 어떤 여자였다.
로비 구석탱이의 전화 부스 앞에서 공중 전화 붙잡고 있던 그녀를 보면서,
아, 진보적인 교육 공간인 이 곳은 역시 '풰션(fashion)'도 다르구먼, 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날 이후로 그녀를 다시 본 일이 없다.
또한 그녀와 같은 완전 튀는 풰션으로 내눈을 확 끌어댕기는 존재를 본 것도 그날 이후론 없음.
대도시라 그런지, 속으로만 진보적인 건지는 모르지만, 좀 세련된 사람들은 있어도,
독특하거나 재기발랄하거나 의외의 복장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 재기발랄함으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면, 하얀색 숏컷에 파란색 섀도우를 살짝 칠한 눈,
몸빼바지 같이 화려한 색깔의 면바지와 아동화 같은 운동화를 매치하는 록산나 선생님 정도?
나머진 다 그냥 그렇다. 추운 나라라서 그런지 다들 우중충한 오리털 점퍼에
여학생들 머리카락은 대충 긴 머리, 다들 스키니진 아니면 레깅스 같은... 유행 따르는 복장 뿐.

매력은 잘 차려입은 사람이나 말끔한 복장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바지 위의 치마라든가, 긴 가디건 위에 덧입은 자켓이라든가...와 같은
어떤 의외성 가운데에서 반짝 하고 발산되는 건데,

그리고 그 발산의 과정에서 재미라는 게 느껴지는 건데,
여긴 그런 매력과 재미를 느끼게 하는
풰션의 주인공이 없다.
첫날, 그 매력 덩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녀도 나처럼 그저 구경온 거였을까.ㅋ

그렇다. 돌이켜보니, 서울에서 내 풰션 세계의 키워드는 매력과 재미였던 것이다.
(그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서도...) 거지같은 두건도 쓰고 다니고
줄무늬 스타킹도 신고 다니고 바지 위에 치마도 두르고
원피스 두개를 겹쳐입고 다니면서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건 의외성에서 발생하는 재미였는데... 그래서 늘 재밌었는데...흑흑.

여기선 그렇게 재미있게 입고 댕기는 사람도 없고 나또한 맨날 지루한 복장이다.
지난 육십구일 중 오십오일 이상, 이 검정색 오리털 패딩 롱코트 입고 댕기고 있다.ㅋ
날씨가 풀리면 뭔가 좀 새로운 풰션을 추구할 수 있을까. 내 풰션 감각은 그 때까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을까...흑흑.

당연한 얘기겠지만, 복장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무엇을 어떻게 입고 쓰고 두르고 다니느냐 하는 건 드러내고자 하는 정체성,
의도하지 않았지만 드러나버리는 정체성을 보여준다.
오늘 뉴스를 보니 프랑스에선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을 금지했단다.
다민족, 다인종 사회인 토론토에선, 물론, 내 피부색과 생김새만으로도 드러나버리겠지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혹은 나는 스스로 '어떤 동양 여자'로 보이고 싶어 하는 걸까.
가능하다면 나와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비쥬얼을 보여주고/스스로 보면서 다니고 싶기도 한데.
그 예상치 못한 비쥬얼을 '재미'와 '매력'으로 명명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날이 따뜻해지기 전까진 아마 이 롱코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