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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칩십오일째 _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지난 시월, 서울에서 Angela Lytle을 만났을 때, 사실 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토론토 태생의 백인 여자가 왜 한국까지 와서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돕고 두레방을 후원할 사람들을 찾고 있는지. 왜 한국의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한국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 대통령 MB를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그리고 그가 이렇게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연대감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이상하게 불편했다. 불편함과 당황스러움, 그러면서도 약간의 반가움이 섞인 마음으로 그 때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아, 백인들은 비판적인 감수성 마저도 자기 나라와 자기 사회를 넘어서는 스케일을 가졌구나. 이것이 백인들의 지구화, 인터내셔널리즘의 한 측면이구나, 였다. 같은 페미니스트로서 그의 활동과 위치와 생각을 읽고 의미화하는 게 잘 안되니깐 그저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고 할까.

오늘 낮, Judy Cho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토론토 한인 사회의 입체감과 역동성 같은 걸 조금 이해했다. 조기 유학 와있는 아이들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사는 한국인 아주머니, 기러기 엄마로 와있는 중년 여자들, 한국인 대상으로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한인들... 이런 사람들 만나면서 읽었던, 일종의 무력감 같은 것이 어쩌면 이 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라는 걸 알겠다. 한 시간 동안, 최근 토론토 한인 사회에 늘어나는 탈북자들이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고 이들의 인권을 위한 단체가 활동 중이고, 여기서도 아내 폭력과 가정 폭력이 심각한 문제이며, 한인 여성회가 한국의 '여성의 전화'나 '성폭력 상담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이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역사 교육을 하는 토론토 알파라는 단체가 있고, 젊은 코리언 캐내디언 여성들을 위한 네트웤이 결성되었다는 것 등, 받아 적었으면 노트 몇 페이지는 될 법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막 들었다. 그러면서 여기를 읽는 눈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내일은 Angela가 OISE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김동원 감독의 다큐 <끝나지 않은 전쟁> 상영회를 개최한다. 제법 큰 강당에서 토론토 최초의 유색인 여성 국회의원인 Olivia Chow의 발언도 함께 하는, 규모있는 행사가 될 것 같다. 토론토 대학 출신의 캐나다인 여성 활동가가 주최하는 행사의 상영 영화에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가 화면에 나오면, 한국인 페미니스트인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걸 보게 될까, 하고 상상해본다. Angela를 만났을 때 그 복잡하던 마음이 다시 재연될까, 아니면 다른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게 될까. 읽기 어려운 텍스트를 만났을 때의 초조함이나 당황스러움이 반복될까봐, 실은 슬그머니 겁이 난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