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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구십삼일째 _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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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이 스킨, 대충 고른 건데,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옷이나 신발도 이런 경우가 있다. 며칠 걸려 고른 옷 중엔 잘 안입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별 기대없이 후딱 사버린 걸 오래오래 마음에 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토론토 와서 사 신은 방한-방수-미끄럼방지 부츠도 십분 만에 구입한 건데 참 편하고 이뻐서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의도한대로, 예상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거, 어쩌면 이게 삶의 매력적인 부분인지도.

_ 오늘 점심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Rita 와 두번째 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한국 음식 먹어봤어? 내가 데리고 갈까? 했는데 그게 오늘 메뉴가 됐다. 크리스티 역 근처 한국음식점 데려가서 조금 매운 순두부 찌개와 돌솥밥을 먹었는데, 여전히 어색한 젓가락질로도 맛있다며 한 그릇을 부지런히 비우더라. Rita 만나러 가기 전에, 얘랑 만나서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는데, 만나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어색함도 덜하고 이야기의 내용도 뭔가 진전된 것 같은. 나는 여기 와서 아시아 여자로서의 내 정체성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그건 마이너리티가 되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했더니, Rita는 열여덟살 때 자마이카에서 1년 살았을 때, '버스를 타고 다니는 유일한 백인'으로서의 경험을 얘기해주더라. 여전히 남한과 북한은 두 개의 나라냐고 묻기에 그렇다며, 북한 주민들의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고 얘기해줬다. 그리고 중국이나 북한 모두 공산주의의 현실화를 잘못하고 있다고, 정말 큰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스페인과 남한의 젊은 여자들은 결혼 하기도 아이 낳기도 꺼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걸 알았고, 스페인으로 몰려오는 이민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서 스페인 인구 감소 문제가 저절로 해결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남한의 미래가 곧 그럴 거라고 얘기해줬다. 내가 대체 스페인 음식은 뭐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더라, 했더니, 다음 번엔 스페인 음식에 도전해보자,며 좋은 식당을 알아보겠단다. 그래서 다음 번엔 스패니쉬 푸드 런치 데이트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약간 아쉬운 걸 보면, 아, 전보다 조금 친해졌구나, 싶다.

_ 백팩 고리가 부서졌는데 수선이 불가능한 상태다. 노트북과 책 몇 권, 물통 까지 넣어다니니 가방이 그 무게를 못견딘 거다. 귀가하면서 쇼핑 센터에 들러 새 가방을 사고 가방 정리도 싹 했다. 이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일, 예상치 못한 지출들이 생겨난다. 그래도 새 가방 생기니 좋다.ㅎ

_ 오늘은 그동안 수업 들은 내용들 정리하고 논문 작업 틀도 잡고 남은 기간 계획도 다시 세워보자, 했는데 도서관에 있는 내내 노트북 파일 정리하느라 시간 다 보냈다. 그래도, 지금 앞에 있는 짐들을 정리해야 또 뭔가 생산할 수 있는 틀을 닦을 수 있겠지, 한다. 이월도 어느새 열흘도 안남았구나, 미끄럼 타듯 어느새 도착점에 가있을까봐 약간 두려워진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