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늘 하는 질문이 있다.
"박사 학위 마치면 뭐해요? 교수 되는 건가요?"
그럴 때 마다, 한국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게다가 여자인 나에겐 그게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를 납득시키는 데에는 몇개의 문장만 있으면 된다.
지금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모종의 선택지는 '다른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명제 위에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박사 논문을 쓰고 나면, '공정한' 경쟁의 룰이 적용되지 않는 장에서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고통과 상처는 아마 나 자신도 겪에 될 것만 같다.
오늘 우연히 알게 된, 한경선 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복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 내가 팔 걷어붙이고 외쳐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같은 여자로서 미안하고 화가 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태일 열사나 노수석 열사의 죽음처럼, 아마도 오랫동안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한경선 열사의 유서와 약력
1. 한경선 열사의 유서
이 글을 받으실 때, 저는 이곳 오스틴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온한 휴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정신 없이 일하며 보냈던 처음 1년을 제외하고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 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귀국 초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뜻 맞는(이해가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양가족을 지닌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고, 강의교수로 지내면서 임용에 필요한 정도의 논문을 쓰기는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규모가 비교적 적은 이곳에서 기업체의 불공정 단합처럼 몇몇 학교들의 이해단합이 더욱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며, 이는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상생발전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개인과 학교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본인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공시한 2005년 1학기 교원임용에 원서를 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2005년 3월말에 가서야 1차 심사에 대한 연락을 통보 받고 다시 해당학기 중반까지 임용과정이 지지부진하게 흐르다가, 5월말경에 이의 결과를 학교측으로부터 통보 받는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또한 이와는 다르게, 2006년 2학기 중앙대학교와 인하대학교에 응시한 교원임용과정에서는 1차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연구나 강의 경력면에서 납득되기 어려운) 결과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 이러한 일들이 몇몇 학교들이 (즉, 건국대, 한양대, 성균관대) 주도한 협력하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이곳에선 원하던 연구활동을 하기 힘듬을 감지하여 미국대학에도 원서를 내었으나 일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저의 미국 비자사본(첨부1)을 보시면 어떻게 그러한 결정들이 이루어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에서 강의전담교수로 있는 동안에는 그 신분상 약자인 점으로 인한 유형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즉, 비정규직이란 점을 악용한 고용자측에 유리한 조건을 담은 2006년도와 2007년도 계약서(첨부 2)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2007년도 계약서에 굵은체로 쓰여져 있는 책임학점은 이전 계약서에서 변경된 것으로, (주당 12학점(시간)에서 주당 12학점으로 변경) 현재 모든 교양영어과목 2시간 1학점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자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변경된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임시수를 책임학점제로 변경하면서 초과강사료를 주지 않으려 했던 부서장이 외국인교수에게 출퇴근시 사고에 대한 보상을 직접 모색하던 모습에 더욱 참담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둘째, 1년 단위로 3년까지 계약이 갱신될 수 있는 상황하에서 주임교수의(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재임용 추천조항은 그의 부당한 처우에 무방비로 놓이게 될 소지를 야기할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교재변경등의 이유로 부서장의 방에 한사람씩 불러 부서장과 과목주관교수 합동의 심문식 면담이라든지, 외부출강금지건과 관련한 동료교수 파면, 그리고 2006년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어수준 평가도구인 모의 토익시험지의 공개거부등 이곳에서 지낸 만 2년이 마치 20년같이 느껴지던 일련의 사례들이었습니다.
현 체제에서 최고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 행하는 모순과 불공정한 처사는 같이 일하던 동료교수의 파면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첨부 3-탄원서). 그의 파면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학교측의 주장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이의 행정적, 법적절차를 위해 그들이 제시한 서류들과 주장들을 보고 전해 들으면서, 이 기관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그 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기원을 위해 두서없이 이 글을 써서 전해 드립니다.
2008년 2월 25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한경선 드림
2. 한경선(韓京仙) 열사의 약력
* 1964년 8월 20일 서울 출생. 가족, 아버지 한광걸, 어머니 강용희, 딸 1.\ * 배화여고 졸업. * 1983년 서울교대 체육교육학과 입학 및 1988년 졸업(학사학위 B. Ed.) * 서울 미동초등학교 교사. * 1996년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영어교육전공 졸업 (석사학위 M. Ed.) 초등학교 영어 교과과정 연구 = An analysis of the curriculum of elementary English in Korea * 대학원 재학 중에 영자신문에 수편의 에세이를 발표. * 1998년 텍사스주립대 (UT, Austin)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ogram에서 박사과정 시작. * 2001년 봄, Henderson Foundation Scholarship in Education 수혜. Texas Alumni Centennial Scholarship Fund for Teachers수혜. * 2002년 California에서 개최된 CALICO(Computer Assisted Language Instruction Consortium) 학회에 논문 발표. * 2003년 텍사스 주립대 Foreign Language Education (FLE) Program에서 논문 ESL learners’ self-efficacy and language anxiety in computer-networked interaction 으로 Ph. D 취득.(지도교수. Dr. Diane L. Schallert and Elaine K. Horwitz ) * 2004년 2006년, 성신여대, 성균관대, 한양대, 경인교육대, 서울교육대 강사. * 2004년 논문 5편 씀. * 2005년 논문 1편 씀. * 2006년 논문 1편 씀. * 건국대 충주캠퍼스 교양학부 강의교수.(2006.3. 1.2008. 2. 28까지 1년 단위 계약) 건국대를 상대로 초과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노동부에 진정. * 2008. 2. 27. 미국 텍사스주립대 오스틴캠퍼스에서 비정규교수 제도 개선 요구하는 유서를 쓰고 음독 자살. 오스틴교민회 텍사스대유학생회 등이 화장을 하고 오스틴에서 장례를 치룸. 국회 앞 비정규교수 농성장, 영남대, 고대, 서울대, 건국대 충주캠퍼스에 분향소 설치. * 2008. 3. 17. 유골로 귀국, 경기도 고양시 하늘문추모공원에 안치. * 2008. 4. 16. KBS2 TV 추적60분, ‘왜 엘리트여강사는 죽음을 선택했는가?’ 방송. * 2008. 2. 26. 1주기를 맞아 국회 앞 비정규교수 농성 텐트에 추모판넬 마련.
3. Professional Interests
Kyungsun Han’s research and teaching interests include the areas of computer-assistant language learning (CALL), applied psycholinguistics, curriculum design, and materials development. She has worked as a teacher, lecturer, teacher educator, and materials developer for English language. Learning projects, i.e., computer-based testing, documents digitization, e-data export that she carried out at the Learning Center of the University of Texas provided inspiring opportunities to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technology integration, and overall digitization of educational materials. She has valuable experience and ideas on technology application to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Her teaching, teacher training, and curriculum materials have been geared to the teaching of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4. 연구 출판
박사학위 수여 논문: Kyungsun Han: ESL learners’ self-efficacy and language anxiety in computer-networked interaction(2003) Kyungsun Han, 「Asynchronicity and English Language Learning - EFL Students’ Self-efficacy in Email Discussions」 『응용언어학(pp. 65~86)』, 한국응용언어학회, 2006. 12. Kyungsun Han, 「L2 Learners' Self - Efficacy Beliefs : Interactive Affects and Effects of Three Different Contexts」 『 Multimedia Assisted Language Learning』(pp. 53~75), 한국멀티미디어언어교육학회, 2005. 6. 한경선(Kyungsun Han), 「L2 Learning Motivation1) in Technology Enhanced Instruction: A Survey from Three Perspectives」 『영어어문교육 제11권 1호』(pp. 17~36), 한국영어어문교육학회, 2005. 3. Han, Kyungsun, 「Exploring ESL Students' Emotional Learning Experiences in Different Interactive Contexts」, 『영어교육(English Teaching)』 Vol. 59, No. 4, 한국영어교육학회, 2004. 한경선, 「Interactive language use and emotional aspects of using computer for class discussions」 『외국어교육 제11권 제2호』(2004 여름), pp. 2146, 한국외국어교육학회. Kyungsun Han,「An Analysis of Equalizing Effects of Different Interactional Contexts: From the Social Constructivist Perspective」 『영어교육연구 제16권 2호』, 2004. 6, pp. 1~28(28 pages), 팬코리아영어교육학회(구 영남영어교육학회) (Pan-Korea English Teachers Association). Han, K., & Schallert, D. (2004) Self-Efficacy and language anxiety: Relating two constructs through ESL learners’ experience in three English language learning contexts. TESOL Quarterly. (in process) Han, K. ESL students' computer-networked interaction: For the betterment of students who are considered reticent in class. Calico 2004, June. Han, K. (2002). ESL learners’ self-efficacy and anxiety in computer-networked interaction. Paper presented at the CALICO 2002. Han, K. (2001). Computer-networked interaction and affective experiences. Paper presented at the Annual DigitalStream Conference.
5. 장학금
Henderson Foundation Scholarship in Education (20012002) Professional Development Award (Spring, 2002)
6. 학회 활동
Computer Assisted Language Instruction Consortium (CALICO) Teachers of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TESOL) South Central Association for Language Learning Technology (SOCALL) 한국멀티미디어언어교육학회.
한국에선 학계와 대학에 관한 비판적인 논의가 없다고 혀를 끌끌 찼던 내가 부끄럽다.
돌아가면 읽을 책들, 즐겨찾기에 넣어둘 사이트들.
<책>
『지식사회 대학을 말한다』(김동애 외 40인 지음, 선인, 2010, 2. 27)와
『비정규교수 벼랑끝 32』(김동애외 30인 지음, 이후, 2009.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