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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종강

새빨간꿈 2010. 4. 2. 14:29

토론토 생활 삼십사일째 _ 2010년 4월 1일 목요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수업이 마무리됐다. 멋지게 감사의 말 몇 마디 하고 싶었는데, 그냥 넘어갔다.ㅎ 이걸로 (원컨대) (당분간은) 내가 듣는 수업은 (내 인생에서?) 마지막. 후련하고 가볍다, 포기않고 마친 내가 장하다.

공짜로, 그것도 영어도 잘 못하는 이방인이 참여하는 걸 허락해준 수업 구성원들에 대해 뭔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서, 망설이다가, 코리언 타운에 가서 호도과자를 좀 사갔다. 작은 접시에 몇 알씩 담아서 골고루 놓아뒀는데, 정작 즐겨 먹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 맛있다! 고마워!' 하며 먹어줘서 고맙더라. 나 말고도 (역시 기혼 여성이 많은 수업 이라 그런지?) 선생님 포함 몇 명이 초콜릿, 치즈, 크래커, 넛, 마실 것 등 뭘 더 싸와서, 책상 위가 먹을 것으로 가득. 약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이 수업에서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Rita는 이번 주 일요일에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단다. 내가 사주기로 한 점심을 끝내 못 얻어먹고 가게 된 건데, 언젠가 어디선가 지구 위에서 (someday, somewhere, on the planet) 다시 만나서 이번에 못 사준 스페인식 점심 식사를 내가 대접하기로 약속했다. 바이, 하고 돌아서는데, 약간 찌-잉. 여기 토론토에서 딱 이번 학기에 나와 만나줘서 고맙다. 삐삐처럼, 당차게, 씩씩하게, 논문 잘 끝내고 멋진 여자로 살길.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이번 학기에 내가 듣는 수업과 양의 수업을 모두 들었던, 우리들의 급우였던 Jannie와는 토론토 떠나기 전에 차 한잔 하자고 약속했다. 5살 때 토론토에 왔다는 중국계 캐내디언 Jannie는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쳐본 경험 때문인지, 원래 성격 덕분인지, 누구보다도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챙겨주고 따뜻하게 해준 사람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삭, 사라져서 나도 모르게 잘 모르던 단어까지 동원해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다. 당신에겐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어요, 라고 이야기해줘야겠다, 꼭.

처음엔 무지 존경하다가 나중엔 조금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던 Sandra 선생님께는 점심 식사 대접을 약속 드렸다. 코리언 레스토랑 가서 밥 먹자 하니 좋아하시네. 길게 이야기 나눠본 건 수업 시작할 때쯤 삼십 분 이후 처음인데, 이제 수업도 끝났고, 돌아갈 날이 얼마 안남으니 그녀와 좀 편하게, 욕심이나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든, 그녀 생애, 마지막 공식적인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참 행운인 듯.

수업 종강 타이밍이 좋아서(!), 내일부턴 부활절 연휴다. 학교 도서관도 모두 문 닫으니 종강 핑계, 연휴 핑계 대면서 마음 편히 좀 쉬어볼 작정. 간만에 쇼핑몰도 가고, 호수 근처도 가보고, 뭐 빈둥거리기도 하고. 낮이 길어진데다 서머타임까지 해서 하루가 무척 길다. 날씨도 좋고 봄은 아직 창창하게 남았고 몸도 건강하고 마음은 가벼우니, 많이 걷고 쉬고 생각하고 나누는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종강 기념, 봄꽃 사진 몇개.
개나리나 진달래로 시작하는 서울에서의 봄과 달리, 여긴 이렇게 수선화와 붓꽃이 먼저 만발.


오늘은 아침기도, 걷기(2시간 쯤), 영어 말하기(오후 내내 주구장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