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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한국은 '영어 나라'

새빨간꿈 2010. 4. 15. 11:26

토론토 생활 백사십칠일째 _ 2010년 4월 14일 수요일

continuing education이 운영되는 OISE의 4층에서는 일년 내내 ESL 과정을 듣는 학생들로 붐빈다. 하루 4시간 12주 과정의 등록금은 4700불 정도. 적지 않은 돈이지만 소위 '좋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거라 좀 더 나은 교육 과정을 제공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 같다. 한국으로 치면 겨울 방학 기간인 1~2월에 보니, 이 과정을 듣는 한국 학생도 적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OISE 1층 로비에 가보면 한국말로 떠드는, 대학생인 듯 보이는 애들이 제법 있다.

OISE 뿐만 아니라, 토론토는 ESL의 도시라 할 수 있을 만큼, 대학에서 운영하는 영어 교육 과정들은 물론, 사설 영어 학원들도 많다. 오늘 들었던 CWSE 세미나에서 발표자는 캐나다 ESL 산업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들었다. 실제로 다운타운에 가보면 한국 학생들이 정말 많은데, 그들 중 많은 비율이 어학연수생인 듯 하다. 사설 학원은 대학이 운영하는 과정보다는 등록금이 싸지만, 이 곳의 비싼 방값과 높은 물가 등을 고려하면, 3~4개월 어학연수비로 수백만원을 쓰는 셈이다.

OISE의 대학원생 중에는 한국이나 일본에 영어 가르치러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CWSE의 ex-coordinator인 Angela와 성인교육 박사과정인 Jeff 같은 친구들은 서울대 언어교육원과 경기도 영어 마을 같은 곳에서 일했다고 한다. Rita 송별 파티에서 만났던 홍콩 출신 이민자 Angela도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대뜸 서울에서 영어 강사 하는 친구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서울은 영어 가르치러 가기에 가장 좋은 도시(best city)란다, 봉급도 좋고 숙소까지 제공해주는 최고의 도시! 여기서 석사 과정 쯤 한 학생들 혹은 몇 시간의 tesol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서울은 한 2~3년 가서 편하게 지내면서 돈도 벌어올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인 것 같다.

OISE 석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Kevin은 9월에 한국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과 지방의 몇 대학의 영어 강사 자리에 지원서를 보내두었단다. 얘길 들어보니 괜찮은 연봉에 숙소까지 제공해준단다. 내가 알기로 Kevin은 영어 교육 관련 하여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친구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박사 졸업장을 가지고도 얻기 어려운 조건과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 와서, '안되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여기서 어학연수를 한다거나 한국에 돌아가서 백인 영어 강사에게 영어 수업 받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초등 영어몰입교육부터 시작해서 대학의 영어 강의까지, 한국은 온통 영어중시 사회가 되었고, 그런 현실이 이 먼 곳, 토론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캐나다인들에게도 한국은 '영어 나라'다. 가끔은 이런 현실이,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보다 더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오늘은 아침기도, 요가(50분), 영어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