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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백칠십일째 _ 2010년 5월 7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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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와 양의 OISE에서의 공식적인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 간만에 케빈,나,양 셋이서 펍으로 고고. carrot mob 뒷풀이 파티를 했던 이 바에서 처음 살구 맥주(apricot beer)를 먹었는데, 진짜 맛있다! 냠냠 맥주 한 잔 마시고 윙이랑 프라이, 치즈까지 안주도 제법 풍성하게 시키고... 펍에서의 금요일 저녁... 즐겼다.ㅎ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의 영어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케빈 말로는, 실제 영어 교육 과정을 포함한 틀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어 교육을 이루어지는 교실이야말로 사회적 정의와 비판적 논의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란다. 그래서 자신은 영어 자체가 목적이 아닌, 영어는 비판적인 논의의 도구가 되는 수업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왜 한국은 외국어로 영어만을 가르치냐고, 다른 언어를 공부할 기회가 없는 게 영어를 맹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자신은 영어가 이렇게 중요한 언어가 되어있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여기까지 듣고, 내가 물었다. "그런데 영어는 니 모국어잖아. 니 모국어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파워풀하고 영향력있고 다들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잖아. 이건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게 영어밖엔 배울 언어가 없어서라고 생각해? 아니야. 영어는 서구 백인의 언어야. 우리는 서구 백인의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 매너, 심지어 외모까지 좋아하거든. 영어 교육에 몰리는 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거 아닐까... 블라블라..." 그러자 갑자기 발끈한 케빈... "그래 내 모국어가 영어라서 얻는 이득이 분명히 있지. 그런데 말이야... 블라블라..."

제법 나이스하고 친절한 백인 남자인 케빈이 이렇게 열내서 흥분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백인-이성애-남자,라는 그의 정체성을 두고 내가 시비를 걸었던 거다. 니가 아무리 영어 교육의 사회적 정의 어쩌구를 이야기해도 너는 그 언어 덕분에 이득 보고 있잖니, 하고 쏘아붙인 거지 뭐. 적당히 빈정대기만 했으면 됐을텐데... 너무 정면으로 받아쳤나... 싶기도 하고. 암튼 설전을 한 번 하고 나니 술자리 분위기가 한풀 꺾였다. 나가자, 하고 펍을 나서는데 비가 퍼붓는다. 마치 여름 소나기 같은 비. 우산이 없는 케빈을 기숙사까지 바래다 주고, 우리 7월에 한국에서 만나자, 하고 헤어졌다. 케빈은 Y대학 여름 학교의 강사로 한국에 한달간 와있을 예정이다. 숙소와 비행기표 제공, 내 강사비의 두배쯤 되는 돈을 받고 온단다. 어쩌면 올 여름, 그와 또 설전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야, 니가 잘나서가 아니라, 백인 남자라서 여기와서 이렇게 돈벌고 있는 거야...블라블라...하고.ㅋ (케빈 미안하다. 니가 한국 친구 하나 잘못 만난 거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