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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보잘것없는여행

새빨간꿈 2010. 6. 12. 14:08


학교 다닐 때, 사범대 노래패 이름이 '길'이었다. 나는 인문대 노래패 소속이었지만, 우리가 노래도 잘하고 공연도 더 잘했지만, 나는 그 이름이 늘 부러웠다, 길. 뭔가 주장하거나 소리지르지 않고도, 그 과정만으로 아름다울 것 같았던 이름이라 여겼던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는 늘, 여행을 가고싶어 안달이었다. 일상의 막막함, 답답함, 숨막힘, 뭔가 아닌 것 같은 그 느낌을 벗어나는 좋은 방법, 그것은 일상을 떠나는 것, 그러나 안전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식으로 떠나는 것, 여행이었다. 그 바람 덕분에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적은 돈으로 훌쩍 다녀올 좋은 기회가 종종 생기기도 했고, 시간만 나면 떠나고 싶어서 들썩거리다 보면 기회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여행을 떠난지 어느새 육개월이 훌쩍 넘었고, 토론토에서 베를린으로 날아갔다가, 지난 주엔 남독일 여행을 며칠 하고 이번주 초에 캐나다로 돌아와 지금은 캐내디언 로키 산맥 Lake Luise village의 어느 유스호스텔. 밤 열시가 훌쩍 넘었는데 아직 바깥은 해 진 뒤의 여명이 남아있고, 나는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걸터 앉아있다. 여행지에서의 밤은 낭만적이면서도 불편하다. 내 방 옷장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있을 내 이불과 내 베개가 그립다. 아마 돌아가고 나면 이 밤이 그리워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 순간조차도 나에게만 속해있던 물건들이 아쉬워지는 것이다.

남독일 여행에서부터 오늘까지 길을 나설 때마다 날씨가 계속 안좋다. 토론토에서부터 별렀던 '샤랄라 여행 패션'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는 옷 없는 옷 다 챙겨입고 목도리까지 두른 채로 다니고 있다. 소화불량과 두통, 감기 초기 기운을 달고 다니고... 그러면서도 매일 저녁 맥주 한 병 정도는 먹어주고 있는 중. 시차적응이 안돼서 일찍 졸리고 너무 빨리 깨어나는 단점이 있지만, 수면 사이클이 조금 당겨지니 숲 산책하기에 좋다. 북미 대륙의 자연은, 이 땅을 강탈해 가장 힘있는 제국으로 성장해온 백인들에게 화가 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이 좋은 산과 강, 골짜기와 호수를 수만년 동안 보고 섬기고 살았을 토착민들은 분명, 지혜롭고 현명하고 겸손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여행도 이제 며칠 안남았다.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 걷고 싶은 길과 오르고 싶은 산, 오로지 나만의 것인 많은 것들과의 해후가 두근거리면서도 얼마 안남은 시간이 못내 서운하다. 집과 길을 구분해두고 살아가면 늘 이런 양가 감정을 안고 있을 수밖에. 그러나, 아무튼, 여행이 끝나면, 길고 깊은 잠을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