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02042011 @ 대구, 앞산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1.
요즘, 할 말이 많다. 수첩에도 블로그에도 다이어리에도 메모지에도 자꾸 뭔가를 쓰고 남긴다. 내 안에 이야기할 뭔가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아마, 그것들이 언어로 풀어낼 정도로 정리되고 숙성되었다는 의미일 거다. 하이퍼 상태 땐 오히려 언어화되지 않는다. 속에서 긍긍긍긍 그렇게 끓고만 있을 뿐.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은, 조곤조곤 이야기 꺼리가 많은 요즘의 이 상태, 딱 좋다.

2.
체스를 배웠다. 그리고 첫 판에서 이겼다. 꺄울~! 대각선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말이 있다는 점에서, 장기보다 더 다이내믹하다. 국민학교 사학년 땐가, 처음 장기를 배웠을 무렵, 자려고 누우면 천정에 장기판이 보이곤 했다. 이번엔 그 정돈 아니지만, 재밌다! 예쁜 체스판 하나 사고싶을 정도로.

3.
삼박사일 집을 비우고 돌아왔더니 화분 하나는 물이 없어서 시들시들해졌고, 선인장들이 모여있던 화분에는 새순이 돋았다. 또 하나의 화분에서는 드디어! 꽃이 피고. 아, 이쁘다 이뻐, 요것들, 룰루랄라, 하면서 물을 듬뿍 줬다. 물만 줘도 잘자라는 화초들. 근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제 한 살이 되는 우리 조카는 이십사시간 내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관심 가져주고 가르쳐주고 같이 놀아줘야되더라. 앞으로 몇 년은 더 에너지를 쏟아야지만 '인간'이 되겠지, 싶으면 올케가 참 대단해보인다. '인간-아기'를 길러내는 에너지의 몇백 분의 일만 줘도 화초들은 쑥쑥 잘만 자라는데. 아마 바로 이 점이 내가 화초들을 키우는 이유일지도.

4.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 여름 내내 숏컷이었는데, 어느새 더벅머리. 체중은 많이 줄었다. 밀가루와 맥주를 '끊은' 결과인 것 같은데, 주변 사람들은 걱정을 좀 하기도. 허리 주변이 가벼워진 건 좋은데, 가슴이 작아진 건 좀 애처롭다.ㅋ 몇 주째 유산소 운동도 못하고 감기와 피로감 때문에 한동안 좀 시달리기도 했다. 어제까진 부비강 염증 때문에 좀 아팠는데 푹 자고 일어났더니 좀 가뿐하다. 잠이 줄어들어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는 거 빼곤 몸의 리듬은 쿵작작 괜찮게 돌아가고 있는 듯.

5.
마실 물을 끓이고 칫솔 소독을 해두고 수건과 속옷을 빨아 널고 다음주 먹을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장보러 나간다. 일상이 지긋지긋해질 때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알겠다. 떠나 있는 동안 생기는 집에 대한 그리움이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을 '조금' 밀어주는 힘이 되곤 한다.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일상에 적절히 배치해두는 것도 지혜다. 몰두하고 몰입할 대상들을 늘여가는 것, 그것이 현명하게 나이 들어가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