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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215, 火

새빨간꿈 2011. 2. 15. 21:27



이연걸 주연, The Tai-Chi Master(1993)


 
1. 간만에 많이 잤다, 푹 자고 일어난 후의 기분. 이런 거였구나, 좋다.

2. 식탐이 좀 멈췄다. 여전히 앞에 놓인 음식은 마구 먹지만, 음식을 구하러 다니진 않는다. 
먹는 거에 대한 적극성이 좀 떨어진? 그나마 좀 낫다.

3. 간밤에, ㅇㄴ 블로그의 포스트를 보고선,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후루룩 읽고 잤다.
권여선의 소설은 <푸르른 틈새>로 부터, 질척이고 꿉꿉한 내 정서의 어떤 부분과 이어져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이어진 얇은 끈으로부터 나를 본다. 여기, 몇 구절 인용해놓고 싶을 정도.

4. 지난 일요일 밤, SBS 스페셜, 무림의 고수 편 관람.
태극권 왕초보 훈련자로서 왠지 어깨가 으쓱!ㅋ 마셜 아트라는 거, 얼마나 매력적인 건지.
반복하여 몸을 단련하는 과정 이외에 고수가 되는 법은 없다는 어떤 인터뷰이의 멘트를 보면서,
록산나 선생님이 얘기하는 'embodied learning'의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
몸을 반복하여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경험은 당연히도 마음의 변화, 인식틀의 변화와 연결될 것이다.
매일의 훈련,은 그래서 사소하지만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5. 주말에 점 다섯개를 뺐다. (타투랑 피어싱도 하고싶다. 이 뜬금없는 신체 상해 욕구ㅋ)
어느새 상처가 아물고 있다. 어떤 상처도 아물기 마련.


(+ 같은 날 저녁, 몇 가지 덧붙임)

6. 토론토에서 만난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의 녹취를 다시 듣고 있다. 생각보다 힘들다.
내가 너무 이 사람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주지 못하고 있구나, 싶어 부끄럽다.
공감해주지 못하고 자꾸 끼어들고 가르치려고 하는 못생긴 나.
그래도 인터뷰이는 콸콸콸 세게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게 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7. 오늘은 밤 열시까지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지, 라고 등교길에 다짐했는데.
역시, 다짐한 걸 실행하기란 쉽지 않구나. 아홉시가 다되니, 엉덩이가 들썩들썩, 한다. 
이 들썩거림 덕분에 내 블로그의 옛글도 읽고 남들 블로그도 기웃 거리고 잘 안듣던 노래들도 찾아 듣는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여기에서 저기로 어제에서 내일로 누군가에게서 나에게로 왔다갔다 하는구나.
그래도 앉아있어본다. 열시까지는.

8. 젊은 시절의 양희은 목소리는, 곱기만 한 게 아니라 힘이 있다,
물론 외모도 (지금이랑은 완전 다르게!) 매력적이고.
만약 그 시절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다면 분명 이 언니한테 반했을 거다.
국민학교 육학년 땐, 담다디를 부르던 이상은을 보고 몇 달 쯤 열병을 앓았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라도 있었으면 팬질 쫌 했을텐데, 그 땐 그냥 티비와 라디오 밖엔 없어서,
그녀가 출연을 하면 갑자기 바로 앞에서 마주친 것처럼 좋으면서 부끄러웠다, 괜히.ㅋ
이상은의 음반을 처음 사고 콘서트에 가본 건 대학 졸업 후였으니, 제법 가늘고 긴 팬심이었고나.

9. 우연히, '짙은'의 노래들을 들었는데, 좋다. 특히, December.
한낮에 서정적인 영화 한편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내가 가진 뭔가를 놓쳐버릴까봐 두려운데, 그게 대체 뭔지, 좀 서성이고 있다, 요즘.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