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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303, 木

새빨간꿈 2011. 3. 3. 21:34


1. 들뜬 기운이 가득하던 어제, 개강날, 띠동갑 녀석이랑 점심을 같이 먹었다. 지난 가을 쯤 알게 된 이 녀석은 제대한지 한 학기 지난 복학생이다. 아, 신입생도 아니고 복학생이랑 띠동갑이라니! 어느새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하는 한탄의 마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데, 저절로 시대와 경험의 차이, 그리고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녀석과 비슷한 점이 의외로 많이 있다. 이 동질감이 만나서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누게 했겠지. 차이 속의 동질감, 동질감 속의 차이, 이런 게 관계를 풍요롭고 재미있게 하는 법. 그래서 이번 학기가 흥미진진 기다려진다. 흐흐.

2.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갑자기 좋아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있음. 예전엔 피아노나 첼로 독주곡이 좋았다. 많은 악기들이 한꺼번에 연주되는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머리와 귀가 피곤해지곤 했는데. 요즘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5번, 6번을 자꾸 듣게 되고, 너무 장중해서 싫었던 베토벤 교향곡들도 좋다. 논문 작업을 하다보면 이상한(queer) 행동을 하기도 한다던데, 음악 취향 변화도 그렇게 설명되려나.ㅋ 아니면 나이 들어가는 까닭인지도, 천천히 변하는 입맛처럼.

3. 아침에, <블랙스완>을 봐버렸다. 종일 영화의 잔상이 남을 거라던 ㄹ의 경고처럼, 과연 그렇더군. 러닝타임 내내 긴장한 탓에 종일 피곤했고, 영화의 장면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증상이 밤까지 이어지네. 나에게 <더 리더>가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블랙스완>은 많은 걸 자꾸 느끼게 하는 영화인 것 같다. 니나가 경험한 그 환상/실재가 자꾸 내 것이 되어 그 순간들을 재생하게 된다. 엄마와 릴리, 베스와 니나 자신을 오가는 그 관계의 회로 속에서, 뱅뱅 자기 자리만 돌고 있는, 그 심리적 처지가, 마치 내 것인 것 같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한데, 다시 찬찬히 뜯어보고 싶다. 어우, 지독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