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1년 3월 8일 화요일

출석부에는 스물 네명의 수강생이 있었는데 교실에 들어가니 열 명도 안되는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내가 올린 강의계획서가 너무 '빡세 보여서' 많이들 포기 했단다. 내 딴엔 최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명시해서 수업 선택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었는데, 학생들 입장에선 '이 수업 이렇게 할 거 많고 복잡하다' 이렇게 보였나보다. 어떻든 포기도 선택의 하나이니, 강의계획서를 작성해서 게시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강의계획서 소개를 하고 수업에 대해 의논하고 책상을 둥글게 배치한 뒤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자유롭게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했는데 대부분은 학과-학번-이름 순으로 소개를 하더라. 정해진 순서 없이 자기가 원하는 타이밍에 소개해도 된다고 하자 역시 소개와 소개 사이의 침묵은 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부담스러웠다. 교실의 침묵에 익숙해지기. 첫 수업에서 연습해보고 싶은 거였는데, 아마 조금쯤은 연습이 되었을 듯. JH의 제안으로 한 사람 소개가 끝나면 질문을 몇 개 던지기로 했는데, 질문을 주고받으며 조금 더 편해지고 웃음도 나오고. 소개와 질문들 사이에서 몇 개의 키워드를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지난 학기 협동학습에 관한 교육공학 수업을 들은 SH는 앞으로 우리 수업의 팀연구 운영에 도움이 될만한 자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 일단은 페이퍼를 하나 올려보라고 했는데, 재기발랄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보여서 앞으로 좀 더 부탁을 늘여갈 생각이다. UK의 학원 강사 경험은 수업의 좋은 재료가 될 것 같고, 전부터 나와 알고지내는 KJH는 반장 역할을 자원해줘서 든든하다. 주로 나이가 있는 남학생들은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해야한다고 공언하는 이 수업에 쉽게 적응하는 것 같은 분위기이고, 비교적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에게는 아직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타대 출신인 청강생 KH에게는 더더욱 불편할 것이고. 긴 호흡으로 보면 이런 차이들이 시너지를 만들기 마련. 단, 담당 강사는 늘 학생들을 관찰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활용되어야 할 것,

자기 소개를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이런 것들이다: "나 스스로를 누리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남들에 비해 부족한 내가 자꾸 인식돼서 괴로웠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는 건 각자 조금씩은 스스로를 열어보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거다. 교육학과로 어렵게 진입했지만 아직도 교육학이 어떤 학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남은 대학 생활과 졸업 후의 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촉박해진다는 이야기들이 나오자 듣는 학생들도 진지해진다. 시작이 좋다. 나는 슬쩍 학생운동과 여성운동 경험, 박사과정 학생으로서의 애로사항을 풀어놓았다. 나도 모르게 좀 더 멋진 말을 찾으려는 사이 나에 대해 이야기할 재료가 떨어져버리더라.ㅋ 자기 소개의 시간이 지나고 '서울대와 나와 교육학'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 그러고 나니 첫수업인데 세시간이 꽉찬다.

이번 수업에서는 새로운 실험들을 많이 해보려고 하는데, 그 핵심은 감정이 흐르는 교실, 나를 열고 상대방을 포용하는 교실이라는 방향성이다. 자기 계발과 경쟁의 시대, 그 흐름을 역행하는 경험을 한 번 해보려고. 물론 나도 아마 처음일 것임이 분명한, 그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