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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315, 火

새빨간꿈 2011. 3. 15. 20:32


1. 오늘은 수업이 있는 화요일. 학생들이 뭔가를 읽는 동안 나는, 햇살이 길게 교실 바닥에 들어와 앉아있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그 순간의 평화. 교실은 많은 것이 생동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가라앉히기도 하는 요술 공간. 거기서 빛나는 문장들과 보물같은 단어들, 그리고 아름다운 우주들을 만난다.

2. 세시간, 길지 않은 시간인데, 교실을 나서면 곧장 피로가 몰려온다. 저녁을 먹으며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시켜 왔더니 연구실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 앉아, 가시지 않은 피로감을 어깨에 얹고 어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남편은 어떤 분이셨어요? 하니까, "음 (침묵 6초), 근까 (침묵 3초)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은 사람이에요" 하는데 빵 터졌다, 혼자. 말과 말 사이의 몇 초의 침묵이 더 많은 걸 이야기하는구나. 이 말하지 않음의 말을 논문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할텐데.

3.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서 뭔가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다. 타투도 하고 싶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이크업을 배워볼까, 색조 화장품을 사볼까, 뭐 이런 낯선 고민을 하고 있다. 일주일을 주기로 매니큐어 컬러를 바꾸고 있고. 가지고 있는 옷들이 너무 낡은 것 같아 아름다운 가게로 보낼 박스 안에 자꾸 옷을 가져다 두게 된다. 이런 걸 봄바람이라고 하나, 주책이라고 하나.ㅋ

4. <나는 가수다> 덕분에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다시 듣게 되었다. 이걸 들으면서 창밖을 보니, 진짜 바람이 우우 분다.

5. 자존심 때문에 화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쿨해 보이지 않을까봐. 그러니까 나는 내가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나 적어도 쿨해 보이고 싶은 거다.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