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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325, 金

새빨간꿈 2011. 3. 25. 17:39


1. 깜악귀,라는 학내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의 '빈집'이라는 곡, 진짜 죽인다. 기형도의 '빈집'에 곡을 붙인 건데, 심지어 시보다 더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 원작 소설보다 영화나 드라마가 더 좋기는 어려운 것처럼, 시에 붙인 노래도 마찬가지인데, 요건 완전 예외. 볼륨을 크게 올려놓고 이 노래를 들으면 사랑을 잃는다는 것, 그 마음이 아프면서도 서늘해진다. 좋다.

2. 조금 외롭다고 느낀다. 혼자 연구실에 앉아있거나 추운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누군가 따뜻하고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의 뒤를 잇는 건, 역시 해야할 일들의 리스트나 냉장고 속에 뭐 먹을 것이 없나, 같은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이나 그리움이라는 감정도 그렇게 오래 나에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느닷없이 찾아왔다가도, 금새 다른 생각이나 감정들로 대체되곤 한다. 그저 왔다 가는 것들. 내 마음을 포함하여,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새삼 다행이다.

3. 예쁜 색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니큐어 서너 개와 오래오래 끼고 다녀 때가 끼인 것 같은 반지를 여러 개 사고 싶다. 봄 내내 손톱을 이 색 저 색으로 칠하고 다니고, 열 손가락 중 두어 개를 빼곤 반지를 좌라락 끼고 다녀야지. 머리카락에 염색을 하고 파마를 뽀글뽀글 하고 싶기도. 돈과 시간이 동시에 없는 요즘, 작은 사치를 부리면서 마음을 좀 가볍게 만들어볼 작정.

4. 지난 밤 눈 내리는 교정을 걸어 기숙사 체육관까지 가는 길, 봄이 쉬이 오지 않아 안달이 나면서도 눈은 눈대로 또 좋아서 헤헤 웃었다. 더위가 올 즈음엔 지금 이 순간들이, 이 눈 내리는 밤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겠지. 그러니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5. 아침 인터뷰에서 들은 말들이 맴맴 종일 머릿 속을, 마음 속을 떠돈다. 논문을 쓰면서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만나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