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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425, 月

새빨간꿈 2011. 4. 25. 13:54


1. 도시락을 싸왔다. 냉동실에 있던 찰밥을 데운 것과 구워서 자른 김 몇 장과 김치, 짱아치 조금씩. 정오가 되자 뱃속이 꼬로록 거려, 창을 열어두고 도시락을 꺼내 밥을 먹는다. 공양게송을 읊고 한 숟갈씩 정직하게 꼭꼭 씹어 혼자 먹는 점심. 사람 많고 시끄러운 학교 식당 밥은 과식도 하고 빨리 먹게도 되는데, 조용히 앉아 도시락 까먹으니 천천히 양만큼만 먹게 돼서 좋다.
 
2. 논문 초고 작성이 일단락되면, 좋은 선생님에게서 배드민턴을 배우고 싶다. 처음엔 정말 어리버리하다가, 지금은 빛의 속도로 실력이 향상되고 있긴 하지만,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배우면 더 재미있게 배드민턴을 칠 수 있을 것 같다. 필라테스 처음 시작했을 때, 운 좋게도 실력있는 선생님을 만나서 운동하는 재미와 기본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기본을 잘 배우고 나니, 그 뒤에 여러 선생님을 만나도 잘 할 수 있겠더라고. 물론, 뭘 배우든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게 중요하지만, 나처럼 몸이 둔한 사람에게는, 운동 선생님은 특히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어야할 듯. 어디, 좋은 선생님 소개시켜주실 분 없삼?

3. 혼자 있는 시간이 길면, 과거로 미래로 생각들이 절로 가지를 뻗는다. 그리고 점점 말 하는 게 낯설고 힘들어진다. 공부하는 일이 직업이 된 후, 성격이 많이 정적으로 변했다고 느끼는데, 이런 모드가 오래 유지되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ㅇㅊ는 자신이 이소라처럼 칩거형이 되어간다고 하던데. 우리 나중에 할머니 돼서 만나면 잘 놀지도 못하는 거 아닐까. (나 쓸데 없는 걱정하는 거 맞지?ㅋ)
 
4. 수업 게시판에선 열띤 토론이 진행 중이다. 간만에 바라보는 온라인 토론에서, 나는 그 내용보다 글을 쓰고 읽는 학생들의 감정이 자꾸 보인다. 그 감정들은 각자의 위치로부터, 입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 입장의 차이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윤리학의 문제야말로 진짜 배워야할 것들이 아닐까. 논리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서 나오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를 돌아보는 연습, 이걸 학생들과 함께 제대로 해보고싶다.

5. 지난주, 차 마시며 수다떨다가, 어떤 사람이 그랬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일 만큼이나 좋아하는 일도 미쳐있는 거라고. 그리고 싫어하는 이유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좋아하는 감정이 훨씬 더 광기에 가까운 거라고. 좋은 데 이유가 어딨냐, 하는 말. 그거 '나 지금 미쳐있다'라는 뜻이었구나.ㅋ 재미있는 건, 가끔,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광기의 감정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는 거지.

6. 여전히 진도는 느리지만, 오늘은 그래도 평정심을 좀 찾았다. 주말 내내 스트레스 받고 그걸 해결하느라 에너지를 다 쓴 것 같다. 오늘 아침엔 욕심을 많이 덜어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완성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 달력 보니, 딱 삼 주 남았네. 조금 밖에 안남아서 조급한 게 아니라, 며칠 안남았다는 게 위안이 된다. 허허. 나 이러다 해탈 하겠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