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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620, 月

새빨간꿈 2011. 6. 20. 18:02


1. 정토회(www.jungto.org)의 단기 출가 프로그램인 '백일출가'를 하려면 삼일동안 만배를 해야한다. (마라톤이나 철봉 매달리기 같은 변태적인 참기 종목에 능한 나로서는 언젠가 이 만배에 도전해보리라,는 도전심이 생김) 만배를 해봤던 몇 친구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면, 흥미롭게도 서사가 참 다양하다. 삼일 간 만배를 다 채우려면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절만 해야하는데, 다리를 비롯한 온몸이 아파서, 그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지겨움 때문에 정말 하기 싫다는 생각이 오만번(만배의 다섯배?) 정도 든단다. 서사의 다양성은 이 하기 싫음에 대한 반응의 양태다. 어떤 친구는 계속 화가 났단다. 왜 내가 만배를 해야되는데? 엉? 뭐 이런. 어떤 친구는 막 슬펐단다. 어떤 사람은 온갖 사람에 대한 원망이 계속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졸립고 피곤하다는 생각이 삼일 내내 떠나지 않고. 재미있게 들었던 양태 중 하나는 어린 아이가 돼서 계속 징징징징 댔다는 친구. 절을 하면서, 엄마, 엄마 하면서 울었단다, 아기처럼.

2. 1번 이야기를 꺼낸 건, 논문 쓰면서 내가 퇴행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 만배를 하면서 어린 아이가 되었다는 그 친구처럼, 나도 계속해서 징징징징 대고 싶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 다들 논문 쓰느라 힘들지 하면서 위로해주고 배려해주는데도, 문자 답 하나 안와도 막막 서운하고, 전화 안받으면 배신감 느끼며 우울해진다. 허허. 서른 여섯 어른 여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심리상태. 이런 내 상태에 당황스럽기도 한데, 뭐 이런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통스러운 상황이 오니깐, 요런 퇴행을 통해 뭔가 보상받고 싶어하는 거? (개똥 정신분석ㅋ)

3. 계속 책상 앞에 앉아있으니깐 골반이 막 아프다. 소화가 잘 안돼서 오늘 낮에도 약간 체했다가 좀전에 나아졌고. 눈 침침, 어깨 결림, 두통도 양념처럼 동반. 이런 #$#^%*&^* 같은 걸 내가 왜 하고 있나 싶지만, 어제부터 상기하고 있는 문장은 이것: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무리 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논문 쓰는 동안 흰머리가 왕창 나서 반백발이 됐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눈꺼풀 신경이 마비돼서 눈도 제대로 못뜬 채로 논문 마무리를 했단다. 논문 쓰고 나서 보니 암에 걸렸더라는 얘기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런 거에 비하면 골반통과 소화불량, 두통 등은 아무 것도 아니네(라고 쓰고, 정신적 퇴행은? 이라고 질문한다).

4. 그렇다, 이 글도 결국은 징징징징. 그래, 어디까지 퇴행할 건지 흥미진진 지켜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