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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논문 일기

0806, 土

새빨간꿈 2011. 8. 4. 17:49


1.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재형의 사진 중 하나. 이렇게 간지나는 사진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라닛! 이기적이고 유치하고 잘 삐치고 자만심 가득한데, 결정적으로 밉지 않다. 마초 냄새를 풍길래야 풍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음악은 어두운데 인간성 중 일부는 코믹해서, 어두움과 밝음이 잘 믹싱된, 나보다 나이든 사람을 보는 안도감인 걸까. 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온 모습을 보고 므흣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음. 히힛. 

2. 지난 주부터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수영장에 가려고 노력 중. 일년이 넘게 안하다가 물에 들어갔는데도, 금새 기억이 난다, 몸의 기억. 물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 평화롭고 편안하다. 나에게 가장 익숙한 호흡과 동작을 찾아서 될 수 있으면 길게길게 헤엄을 쳐본다. 몸의 리듬을 잃지 않는 일, (물에서) 겁먹지 않는 일. 요 두 가지만 지키면, 논문도 수영도 문제될 게 없다.

3. 간만에 ㄹ와 ㅎㅃ을 만난 그날 저녁, 백만년 만에 마신 맥주에 취했다. 집에 와서 y를 꼬셔서 막걸리를 한 잔 더 했는데, 그 뒤론 수도꼭지가 고장난 듯, 계속계속 눈물이 나는 거다. 처음엔 뭔가 서운해서 눈물이 툭 터졌는데, 나중엔 왜 우는지 이유도 없는데 눈물은 멈추질 않더라고. 다음날 숙취와 부은 눈을 핑계로 집에서 종일 딩굴댔다. 배고프면 y가 끓여놓고 나간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노트북으로 밀린 드라마들 보고, 가끔 트윗하다가 졸리면 스르륵 자고. 무릎팍에 공블리 나온 거 까지 다 보고, 걸레 빨아서 마루 바닥을 싹싹 닦은 다음 이불을 펴고 누웠더니 천국이 따로 없더군. 논문 끝나면 적어도 일주일은 이런 날들로 채워보고 싶다.

4. 졸업(을 언제할지는 막막하지만) 전에 캠퍼스의 이곳 저곳을 탐색 중이다. 음악대학과 미술대학 내정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미대 조소 작업장 창은 아주 크고, 그 창너머로 녹색 나무들이 울창하다. 음대에선 내내 이런저런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리는데 불협화음이긴 해도 듣기 나쁘지 않다. 경영대 로비는 시원하고 편안하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 위해 연구실을 나오면 캠퍼스 여기저기를 다녀본다, 학교 밖의 다른 곳에서도 이런 저런 포인트들을 찾을 수 있는 연습을 하는 듯.

5. 늘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드디어 직면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자 겁이 나서 후덜덜. 대장부는 몰려오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논문을 쓰면서 한뼘쯤 내면도 자라나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