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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긴겨울

새빨간꿈 2012. 12. 24. 18:55


이모가 다녀가셨다. 엄마의 두번째 동생. 

삼십대 중반부터 우리집 가까이 사셔서 엄마와 가장 가까웠던 이모.

너무 더웠던 지난 여름, 아기를 낳은지 2주밖에 안돼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내게 오셔서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아기 기저귀를 매일 아침 개켜주셨는데, 

이번엔 유난히 추운 날들 며칠을 우리집에서 머물다 가셨다.

그 사이 나는 엄마되는 연습을 좀 했고, 아기는 단단하게 자랐다.


이모는 시금치 나물이랑 파래무침, 엄마식 찜닭과 쇠고기 국을 만들어주셨다.

진짜 오랫만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상을 받으니 입맛이 돈다.

가시는 날까지 집청소 알뜰히 해주시고, 잘 지내라며 여러번 거듭 작별인사를 하는 그 눈빛.

찡, 하고 마음이 더워진다.


이모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엄마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아직 엄마 가시던 날을 떠올리며 같이 운다.

엄마의 예뻤던 모습, 유쾌하고 재치 넘치던 모습들을 이야기하며 같이 웃는다.

엄마를 같이 기억할 수 있는 이모가 있어서 좋다,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챙겨주시는 건 너무 감사하고.


이모 계시는 동안, 동지를 같이 맞았다.

밤이 제일 긴 날. 근데 그날만 넘기면 이제 해가 점점 길어진다.

겨울의 한가운데 있을 때, 봄이 올거라 믿기 어렵지.

그래도 봄은 온다. 

조금씩 내게도 해가 더 길어지고 있을까.

긴 겨울의 어디쯤을 나와 이모가 걷고있을까,

이모가 떠나고 난 늦은 오후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