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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잘 하는 아이는 가끔 놀라운 이야기들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엄마 배우는 게 뭔지 아랴?(알아?)"

"배우는 게 뭐지? 엄마는 모르겠는데..."

"배우는 거는 계속계속 연습하는 거야. 내가 치카 할 때 음 푸(입 헹구는 것)를 계속계속 연습하는 거 처럼(의기양양한 표정)."

 

계속 연습하는 게 배우는 거란다. 오마이갓. 이런 문장은 알려준 적이 없는데, 배우는 것, 연습 등등을 조합해서 나름 정의를 내린 것 같다. 맞어, 배우는 게 그런 거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계속 연습해서 몸에 익히는 것. 그래서 무의식에도 새겨지는 것. 맞네. 허허.

 

오늘 아침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힘도 쎄고 키도 크고 또 인기도 많고."

"뭐? 인기? 너 인기가 뭔지 알아?"

"응, 인기는 힘이야."

 

ㅋㅋㅋ 어디선가 인기가 많다, 없다, 이런 얘기를 들은 거 같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뭔가 힘을 주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 걸까. 암튼, 나는 이번에도 그래, 맞어, 인기가 힘이지, 했다. 헐.

 

2. 아기엄마 수행법회에 가끔 오시는, 아이가 중학교 2학년 학생이라는 한 보살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아기가 하자는 대로 하면 그게 제일 자연스러운 일이고, 제일 잘하는 거라고. 엇, 아이가 하자는 대로 어떻게 다 해주라는 거지? 의문이 생겼다. 물론 질문을 하진 않았고 속으로만 궁시렁.ㅋ

오늘 아침에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가겠단다. 보통 아이가 어린이집 안가겠다 하면 화가 먼저 났다. 다음 감정은 어떻게 해야할지(설득해서 보내야할지) 몰라 멘붕. 근데 오늘은 그래, 가기 싫구나, 하고 아이 마음을 받아줘봤다. 생각해보니 컨디션이 안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간밤에 늦게 배가 아프다, 고프다를 헷갈리게 이야기하며 잠을 잘 못자다가, 똥을 한 번 싸고 잤는데, 아침도 시원찮게 먹는다. 그러고보니 내가 하자는 건 다 싫단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내 마음이 그 쪽으로 가니 아이는 왠일인지 순순히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그러고보니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해주라는 게 아니라, 아이 얘길 잘 듣고 마음을 받아주라는 거였나.

 

3. 텃밭 농사가 시작됐다. 어제 첨으로 밭에 가서 풀을 뽑았다. 한 시간 남짓 햇살을 등지고 앉아 풀을 뽑는 동안 아이는 좁은 밭 이곳저곳을 다니며 잘 논다. 장난감이라고는 작은 모종삽 밖에는 없는데. 상상 속에서 뱀도 나오고 쥐도 나오고 벌레도 나온다. 나는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 쳐주고 때로 "엄마 일루와봐" 하는 명령에 따라주기만 하면 됐다. 어차피 온밭에 난 풀을 뽑아야 하니 여기로 가도 저기로 가도 상관없었다. 중간에 물도 한모금 마시고, 일 끝나고 나서는 아파트 단지로 돌아와 삶은 달걀과 귤을 까먹었다. 나는 내 일을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노는데, 우리는 또 같이 일을 하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오롯이 아이에게 내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일의 속도와 규칙에 아이를 맞추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둘이 공존하는 것. 그게 가능한 시공간을 찾고 들어가는 것. 이런 의미에서 텃밭은 완벽하다. 봄이 시작되고 텃밭을 시작하는 게 좋다.

 

4. 휴직도 어느새 5개월이 넘었다. 앞으로 7개월밖에 안남았구나. 금쪽 같은 시간이다. 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