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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1025] 아이였던 나

새빨간꿈 2015. 4. 30. 11:15

아이의 새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곳이다. 나는 조합원 자격으로 아이 보육을 이 어린이집에 일임하고,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믿을만한 분들이고 아이들의 부모들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매일 자연과 가까운 곳에 나가 놀고 교사, 부모들과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아이의 온갖 감성을 존중하고 세심한 배려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인 듯 하다.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이런 어린이집이 있어서 기뻤다. 다행히 이 곳에 등원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어린이집 등원 일주일 전부터 나는 우울했다. 바닥을 친 것은 지난 일요일밤이었다. 낮에 커피를 두 잔 마셔서인지, 피곤한데도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깨어있었는데 간만에 어린시절의 날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기억의 이편으로 떠올라서 혼자 울고 웃고. 엄마가 꼭 필요했는데 부재했던 순간들, 너무 가난해서 부끄럽고 쪼그라들었던 순간들, 꼬질꼬질하고 우울해보였을 나를 조롱했던 어떤 교사의 표정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손 꼭 붙들고 따라다녔던 순간들... 나이 마흔에 돌이켜보아도 여전히 불쌍하고 어리고 약했던, 아이였던 나. 그 어린 나를 떠올리며 슬프고 아파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래도 까먹지 않고, 어린 나를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잘 컸다 얘기해줬다. 그래서 아이 옆에서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아이를 새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나면, 오후 5시까지는 내 시간이 생긴다. 거꾸로 말하면 아이와 종일 붙어있을 수 있는 날이 이제는 끝나가는 거다. 그게 나는 서운하고 허전했던 거 같다. 처음엔, 아직 어린 아이를 종일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실은 아이와 떨어져지내는 것에 대해 내가 못견뎌 했던 거다. 아이였던 내가 보냈던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간들을 아이와의 시간 속에서 치유받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서 아이를 못 보내고 품에 계속 안고 있고 싶었나 보다.

 

아이였던 나는 어리고 약했지만, 또 강하고 단단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잘 자랐고 성인이 돼서는 엄마를 떠나와 혼자 독립했다. 지금은 때로 엄마가 그립지만,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아이를 이만큼 키웠고 앞으로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봐주고 돌봐줄 자신도 있다. 결핍은 그것대로 내 마음에 남아있지만, 나에게 채워진 보살핌과 사랑의 힘도 제법 크다는 걸 이제야 좀 알겠다. 드디어 바닥을 치고 올라가고 있는 중인가.

 

엄마의 울적한 마음과 별개로 아이는 새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 나들이 가서 노는 게 재미있고 교사들도 마음에 드는가 보다. 엄마랑 떨어지는 게 자연스럽진 않지만, 받아들여질만한 듯 매일 어린이집 가자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다. 내 생각보다 아이는 단단하고, 어린 시절의 나보다 충만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아이가 이렇게 씩씩해서 아이였던 내가 갖지 못했던 어떤 부분들이 조금씩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날씨가 차암 좋으네. 오늘은 숲에 가서 도시락 까먹고 온단다. 보물찾기도 한다며 한껏 들떠서 엄마랑 빠빠이 한다. 고마워. 아이였던 나도 지금 내 아이도 단단하고 씩씩해서 참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