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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1038] 오늘 저녁의 교훈

새빨간꿈 2015. 5. 13. 22:47
하원길 녀석의 컨디션을 보니 졸음이 가득하다. 졸리고 피곤하면 나오는 땡깡이 귀가길 신발 신을 때부터 슬금슬금. 드디어 버스정류장에서 눈물바람인데 버스는 좀처럼 오질 않고. 그래서 녀석을 안고 한 정거장 걸어가기로 한다. 노래도 같이 부르면서.

꽃은 다 이쁘다. 풀꽃도 이쁘다. 이꽃저꽃 저꽃이꽃 이쁘지 않은 꽃은 어없따.

아직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질 않았는데 버스가 오길래 전력질주하여 겨우 승차. 오전에 다른 엄마들과 티타임 갖느라 종일 거의 쉬지 못한 내 몸은 이 때 이미 배터리 아웃. 땡깡모드 녀석 달래며 저녁 짓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집근처 핏자 집에 둘이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차마시러 가본 적 있는 레스토랑인데 넓고 전망 좋아 쉬는 듯 밥 먹기 좋을 듯 해서. 12000원짜리 새우필라프 주문해서 둘이서 맛나게 잘 먹었다. 내 기준으론 좀 비싼 저녁식사 가격이었지만 좌식 바닥에 전망 좋고 넓고 맛도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밥 먹으면서 몇 번이나, 이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심리적 체력적으로 에너지가 바닥인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수많은 가난한 엄마들은 그럼 어떡하는지. 감사와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의 선택은 최선이었다. 그 덕에 집에 와서 짜증없는 기분으로 아이 씻기고 빨래 돌려 널고 간식도 먹이고 재울 수 있었다.

저녁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 한정거장 정도의 거리. 아카시아 꽃냄새가 은은하길래 고개를 들어 나무와 꽃을 보게 했다. 그리고 아카시아 노래도 있다며 들려줬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꽃 잎사귀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솔바람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고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가사가 가물가물한데도 또 이상하게 끊기지않고 노래가 되어 나왔다. 아파트 오솔길 따라 둘이 걷는데 봄저녁 바람은 우우 불고 우리는 노래를 하고 마주봤다가 손을 잡았다가 키득거리다가. 시간이 느리게 차곡차곡 그 순간들을 채웠다.

집에 돌아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말끔히 씻은 아이는 제자리에서 잠들었다. 잠들기 전에 어린이집에서 낮에 있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마음도 슬쩍슬쩍 나눴다. 에너지가 바닥이 되기 전에 아이가 잠들어 참 다행이다.

날씨는 좋고 몸은 아프지않고 마음건강도 최하는 아니라 다행이다. 다른 일들처럼 아이 돌보는 일도 에너지 배분과 조절을 필수적인 거 같다. 돌아보면 난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늘 최선을 다하는 것만 알았고 그만큼 자주 자책했던 거 같다. 그래서 내 육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늘 구했고. 오늘은 강약조절에 대해 새삼 배웠다. 안까먹고 반복 적용해보려고 긴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