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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기리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동생이나 나나 아이 키우며 먹고 사느라, 그리고 떨어져 살고 있으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매년 기일은 꼭 챙기기. 그리고 엄마 생신 즈음에 산소에 찾아가기. 요거 두 가지는 동생과 내가 만들어 지키고 있는 규칙이다. 올해 엄마 생신은 지난 금요일(3/18)이었다. 그래서 주말엔 동생네와 이모를 만나 엄마 산소에 갔다. 아침부터 기차타고 수원역에서 황간역까지 가서 동생과 이모를 만나 엄마를 만나고 다같이 대구 동생네 가서 하룻밤 같이 지내다 어제 낮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는 찾아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과일과 오징어, 술을 간소하게 차린 후 절을 한다. 이모는 여전히 엄마 앞에서 절을 할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신다. 나는 이제 울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니, 마음 속 그리움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을 펼쳐내어놓기가 두려운 것 같다. 산소에 갔다가 우리는 근처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날씨가 좋았던 작년엔 산소 근처의 산에서 한참 놀다 내려왔는데, 올해는 흐리고 바람이 불어 서둘러 내려왔다. 티브이 맛집 프로에 나온 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근처의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고 차에서 졸며 동생네로 다같이 몰려갔다.


동생네에서의 시간은 단순하고 유치하다. 작은 집에 어울리지 않는 큰 티비 앞에서 우리 모두 헤헤 웃으며 넋을 놓고,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몰려다니며 논다. 올케의 작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고, 저녁엔 동생이 다운받아놓은 영화 한편쯤 같이 본다. 아이들을 재우고 다들 마루에서 다시 모여 맥주 한 잔을 기울인다. 오가는 대화는 심각할 때도 있지만 가벼울 때가 더 많다. 피곤한 몸으로 꿀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은 늦잠과 게으름. 나는 종종 동생네 마당과 텃밭을 둘러보고 청소도 좀 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동생네를 나설 때쯤 아이들은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일을 아쉬워한다. 안녕- 다음 계절에 만나자아, 하고 헤어지는 내 마음은 아쉽기도 시원하기도 하다. 올해도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봄 여행이 잘 끝났구나.


엄마는 더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지만, 또 엄마는 늘 여기에 계시는 것 같다. 엄마 산소에 찾아가서 엄마를 볼 수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우리가 만나면서 엄마를 느끼고 본다. 이젠 엄마 이야기를 무심한 듯 할 수도 있고, 엄마의 아들인 동생과 동생의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랑 닮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팍팍하고 위험한 이 시대를 아이 둘 데리고 대견하게 살아가는 동생, 마음 먹으면 찾아갈 수 있는 엄마 산소, 봄이 시작되는 계절에 있는 엄마 생신, 동생과 내가 만나면 항상 동행해주는 이모, 피곤해도 별소리없이 여행의 일부가 돼주는 남편.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이런 게 엄마를 만나는 일,이라고 믿게 된다. 아마도 엄마는 모여 앉아 이야기하고 맥주를 마시고 다같이 티비 앞에 앉아 있는 우리와 매순간 같이 할 거다. 이런 게 엄마를 기리는 일이지, 하고 간만에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