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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그들이 나에게 패악을 부리고 나를 괴롭힌 거지만, 실제로 나는 그들에 비하면 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걸 오늘 새벽에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나에게 그것도 일종의 협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강자인 나는 그들의 요구와 태도와 폭력적인 언행을 참아야하나. 다 받아줘야 하나. 그 방식을 문제 삼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인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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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에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

 

바지에 묻어온 벌레를 털어내었다

언젠가 누군가를 이렇게 털어낸 적이 있었다

털리면서도 나의 바짓단을 누간가는 무작정 붙잡았다

나는 더 모질게 털어내었다

서늘하고 아팠다

벌레여 이 바지까지 온 네 삶은 외로웠나

이렇게 말하는 건 나, 중심적임을 안다네,

사라져가는 생물들이 쉬는 마지막 숨을

적어본 적이 없고

모든 살았던 것들의 눈동자 역사를

적어본 적도 나는 없었으므로

 

벌레가 떨어져나간 자책의 자리

오늘은 뭘 먹을까

흰밥에 붉은 기러기발 같은

무말랭이의 오후를 먹을까

내 바지에서 떨어져나간 날개 달린 벌레가

아직 날지 못할 때

내가 한사코 털어내던

그날의 발길을 잡던 당신과 한 상 같이 먹고 싶다

푸른 벌레가 점심 걱정을 하는 오후가 되어

들판이 점심 걱정을 하면서 푸르러지는 오후가 되어

벌레가 나를 벌레적으로 생각하며 푸르러지는 오후가 되어

 

- 허수경,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