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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보잘것없는여행

파도

새빨간꿈 2022. 2. 20. 15:25

경포대 근처 두부집에서 순두부 찌개를 먹고 동네 작은 빵집에서 저녁과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산 뒤 숙소가 있는 양양으로 향했다. 해안도로로 접어들자 오른쪽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바람 때문인지 파도가 거셌다. 기사문 항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파도와 바닷바람을 혼자 실컷 느꼈다. 차갑고 거침없던 바람과 파도소리. 마스크를 벗고 혼자 막막 웃다가 너무 추워서 차로 돌아와 숙소로 향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가는 혼자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태어나 처음이다. 가끔 혼자 길을 떠났어도 목적지에선 일행을 만나 함께 다녔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던 적은 정말 처음이네. 마흔 일곱이 시작되는 즈음, 나에게 일어난 일.

당연히도 다 좋지만은 않았다. 여자 혼자라 변을 당하면 어쩌나 겁도 났고 어떤 순간은 나이 든 여자의 혼자 여행이 어찌 보일까 주눅도 들고. 그렇지만 온 시간을 내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조용히 아무 말 않고 있는 것도 새삼 평화로웠고, 빈 공간과 시간 안에 있다는 것도 좋았어. 서두르지도 살피지도 않던 그 시공간.

무엇보다, 이제껏 제도와 타인에 의해 속박당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 나를 가둬두고 있었구나 알게되었다. 익숙한 담론과 시각 안에서 내가 나를 대하고 있었다는 것. 이걸 알게 되어 마음이 좀 시원해졌다.

다시 혼자 파도 보러 갈 거야. 그 땐 불안이나 주눅은 좀 줄어들고 편안함은 더 늘어있겠지. 더 나이든 내가 지금보다 더 마음에 들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