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1952), <검은 피부, 하얀 가면>
1장 흑인과 언어 언어란 절대적으로 타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3). 앙띨레스에 사는 흑인들은 불어 구사 능력에 따라 백인화의 정도를 평가받는다(24). 언어를 정복하게 되면 형언 불가능한 힘을 선사받게 된다(25). 사실 흑인만의 문제란 없다. 혹여 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우연적이기는 하지만 백인과 관련되어 있다(39). 정작 흑인을 분노케 하는 것은 이런 의도나 의지의 부재, 관심의 결핍, 무관심, 흑인들을 곧이곧대로 재단하고, 가두고, 야만인 취급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태도 그것이다(42). 흑인은 착하고 말 잘 듣는 검둥이로만 여겨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검둥이들을 무작정 교육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원형, 즉 노예의 탈을 벗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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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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