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의 열 두번째 생일이다. 12년 전 오늘 이 시간 아이는 내 몸 속에서 나와 몸을 씻고 아마 처음으로 젖을 먹었을 거다. 손도 얼굴도 발톱도 코도 귀도 다 작았던 아이가 지금은 길쭉하게 자란 6학년 학생이 되었다. 하루하루 어떻게 흘러가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른 건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유튜브에서 찾아듣던 아이가 며칠 전엔 보컬을 맡은 이 가수 노래를 너무 잘한다며 공연은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미 에이즈로 사망했다고 말해주니 에이즈라는 병이 무슨 병이냐고 그 병 때문에 인류의 큰 즐거움이 사라졌다며 화를 냈다. 아아- 좋은 음악이 뭔지, 그 음악을 즐기는 게 어떤 건지, 누군가의 죽음이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줄 아는 존재가..
나는 돈을 잘 못쓰는 사람이다. 비싼 거, 좋은 거 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쓸 만한 물건은 오래 되어도 버리지 않고 쓰고, 디자인을 위해 쓰던 물건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를 낳은 후엔 아이 옷이나 물건에도 이런 소비 습관이 적용되었다. 금새 자라기 때문에 고급스러운 옷, 비싼 옷은 사입히는 일이 드물었다. 물려받은 옷만으로도 이쁘다 하며 입힌 시절도 꽤 길다. 그런데 아이가 크니까 그게 잘 안될 때가 있다. 이젠 제법 유행도 따지고 디자인이나 스타일 면에서 다른 아이들 옷과 비교하기도 한다. 아이 옷 중에는 겨울 외투가 제일 비싸다. 방한용 패딩 점퍼는 이삽십 만원 가량도 한다. 그동안은 저가 브랜드 아동복 세일 때 십만원 미만으로 외투를 사입혔다. 재작년에 넉넉한 사이즈로 샀던 외투가 올..
시래기 된장국을 데우고 계란말이를 해서 아이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집에서 십분 거리 도서관에 아이를 내려주고 근처 스터디 까페에 도착했다. 키오스크로 해야하는 입실과 결제 절차를 마치고 작은 방에 들어오니 졸음이 밀려온다. 아이스 커피믹스 한 잔 타서 자리에 앉고, 노트북 와이파이 연결을 한 후, 수업을 위한 줌 회의실을 연다. 수업을 마치면 아이를 데리러 도서관에 들러 차에 태우고, 점심을 해결한 뒤,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어느새 열두 살이 된 아이는 제법 어른스러울 때도 있지만, 여전히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이기 때문에 오후에 내 공부를 할 시간을 내는 것이 안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계절 수업 기간에는 5시 기상하여 공부와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고, 오늘 아침엔 5시 30분에 일어나 젠..
이제 십년이 넘었지만 아이와 종일 같이 있는 건 여전히 어렵다, 내게. 작정하고 같이 놀자! 하고 마음 낸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도 할 일이 있고 고민할 거리가 있는 일상의 시간은 더 어렵다. 아무 때나 내 시공간을 점유하는 아이. 그것에 대해 잘 대응해줘야할 것 같은 묘한 압박. 아이 끼니를 너무 대충은 아니게 챙겨줘야 하는 책임. 아이의 감정적 오르내림에 반응해야하는 감정노동까지. 물론 즐거운 순간, 충만한 시간도 당연히 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존재와 함께 있는 건 어떤 만족감을 준다. 그래서 아이와 한참 붙어있다가 그 시간이 종료되면 아쉽고 서운한 느낌이 든다. 요며칠 울적해서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힘든 건가 생각했는데 실은 아이와 너무 오랫동안 붙어있어서 울적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
오늘 낮, 4박 5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맞으려고 기차역에 나가 기다리다가 문득 엄마 생각. 고등학교 졸업 후 집 떠나 살며, 기차 타고 엄마집에 갈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기차역에서 나를 기다렸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출구로 나가면 목을 빼고 기다리다 나와 눈을 맞추고 씩 웃으며 내게 다가오던 엄마.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거기 그렇게 서있었던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그걸 한 번도 생각 해보지 못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아이가 타고 온다는 기차 도착시간이 살짝 지나니 사람들이 출구로 나오기 시작하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리고 약간 초조해진 채,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를 찾는다. 사람들 사이로 아이가 내 눈에 보이던 순간 나도 엄마처럼 씩 웃고 아이..
간밤 꿈에 엄마의 죽음을 전해듣고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꿈 속에서도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또? 하는 생각과 또 들어도 너무나 아픈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 꿈 속에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는데 의연히 나를 감싸고 위로해주셨던 것 같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해서 이런 꿈을 꾸었던 걸까. 잠들기 전 남편과의 대화에서 내가 경험한 육아의 힘듦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에게 "나는 도움 받을 엄마도 없다"고 말했는데 그 순간 그의 반사적인 코웃음을 들었다. 나는 사실 그 말을 할 때 약간의 눈물이 맺혔었다. 나에게 엄마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고단하고 서러운 일이구나 싶었는데 그는 그 말과 그 말에 담긴 마음을 비웃는 것 같았다. 대화를 끝..
지난 한 주 내내 혹은 늘 그렇듯 평일에 혹사당한 몸과 마음은 주말의 휴식을 필요로 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난 몇 년 간 주중이든 주말이든 나의 휴식은 다른 사람에게 육아와 살림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남편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 늘 녹록치 않았고 (부탁을 너그러이 들어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기억한다) 그게 언제나 서운하고 힘들었다. 나의 취약함을 알고있고 그 부분을 채워주려 배려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고 그런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포기가 안되었다. 오늘 오전에도 부탁(너무 힘들고 배고프니 점심을 차려달라고 했다. 아침은 내가 밥하고 국하고 반찬해서 차려줌)을 했는데 화를 냈다. 그 반응에 너무 화가 나고 절망스러워 힘들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좀 서늘해진다. 아직도 자립하..
퇴근 후 아이와 둘이 밥 해 먹고 피곤한 저녁을 견디는 게 참 힘들었는데. 지난 일년 여의 시간도 힘들었다. 첫날, 더이상 외롭지도 막막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신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갈 수록 그녀의 집에 가는 내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예민해서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지만, 그녀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마음이 제일 힘들었던 건 사실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진술들. 아이 돌보며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그녀는 애어른,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 속이 빤한 아이, 어른을 설득시켜 제 멋대로 하는 아이라는 평가와 하소연으로 내게 풀곤 했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을 인정하는 척 하며 아이에게 짐짓 야단을 쳤다. 때로 아이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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