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많이 자랐다. 내일로 꽉찬 20주가 된다. 뒤집기도 곧잘하고 범보 의자에 잘 앉아있는다. 누워서 보던 세상과 다른지 엎드려있거나 앉아있을 때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 된다. 감정 표현이 다양해졌고 표정이 훨씬 다이내믹해졌다. 노래를 불러주면 웃고, 장난을 걸면 그게 장난인 줄 알고 반응한다. 지난 주 월요일엔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한참 아기 옆에 누워 같이 장난을 쳤다. 내가 하는 말도 조금이지만 알아듣는 것 같다. "쮸쮸 먹을까?" 하면 끙끙 앓듯이 우는 소리를 낸다. 누워있는 아기에게 아기띠를 가져가서 "엄마가 안아줄까?" 하면 싱긋 웃는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 표현도 못했던 아기가 웃고 표정을 찌푸리고 다양한 소리를 내고 노래를 알아듣고 나와 장난을 친다. 이렇게 ..
이상하다. 아기를 낳고 난 후, 잠이 안오는 밤은 처음이다. 늘 너무 지쳐서 곯아떨어졌는데. 아, 생각해보니, 9주 전 오늘밤에도 잠이 안왔지. 진통 때문에 이틀을 꼬박 새고, 아기를 낳느라 무지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밤 잠이 안왔다. 조산원 방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으로 잠든 아기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신기하고 기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던 그 밤. 새벽이 히끄무레 밝아올 때쯤 잠이 들면서 가졌던 그 평화로운 기분. 오늘은 왜 잠이 안오는지 모르겠다. 홀로, 그날 밤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서일까. 임신부 요가를 가면, 뱃속의 아기에게 태담을 해주라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사랑해, 라고 말해주라는데, 나는 끝까지 그 말을 안했다. 도무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태아에게 느끼지는 않는다..
엄마일기, 폴더를 만들었다.기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낮, 아기가 안자고 많이 울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잠투정을 달래서 겨우 재워놓으면 금방 깨곤 하는 걸 반복해서점심을 챙겨먹을 시간이 없을 지경이었다.낮엔 젖먹이기와 재우기를 분리시켜야한다는 육아 방법을 따르기로 했지만,오늘은 그걸 지키는 게 무리인 것 같아서, 젖 물려 재우고 수유쿠션에 누워있는 채로 아기를 마루 한쪽에 둔 다음,얼른 밥을 챙겨먹었다. 그 시각이 오후 세시반쯤.그 전까진 마음이 전쟁터였는데, 먹고 나니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졌다.아기가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아기 마음인 걸.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라는 너그러운 마음이후다닥 밥을 먹고 나서야 생겨난 것. 아기는 참 이쁘다.늘 좋은..
아기 이름은 은규입니다. 빛나는 별,이라는 뜻이에요.오늘로 38일째. 완전 쪼끄만, 신삥 인간입니다.발바닥도 팔꿈치도 무릎도 보들보들 해요. 한 번도 땅에 닿아본 적 없는 보드라운 발바닥을 만지고 있노라면 아득한 기분이 든답니다.아직 아무 것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인데요,어떨 땐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비밀을 지키고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여겨질 때도 있어요.아직 완전히 육화되지 않은, 영혼에 가까운 존재.그 존재와 24시간 붙어있으니 적응이 안되고 낯설고 그러면서도 사랑스럽고...이런 내가 좀 납득이 되기도 하네요. 빛나는 별,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가만히 생각해봤어요.빛나지 않는 별이 있을까, 하고.빛나지 않는 별은 없습니다. 나와 너무 멀어서 빛이 아직 전달되지 않았거나, 덜 빛..
그제, 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해주신 N선생님을 뵙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 지난 2년 사이, 선생님은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예정일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가 되었다. 전문직 여성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난 번과 달리, 우리는 아이를 낳는 일, 엄마가 되어 경험하는 것들 그리고 모성모호 정책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겸손하고 통찰력이 깊은, 감성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N 선생님. 나는 이런 여자 어른을 좋아하는구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깨달았다. 식사를 거의 마칠 즈음, 문득, 선생님은 산고(産苦)의 순간에 아버지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큰 딸이었던 선생님의 결혼 즈음 암으로 돌아가셨다.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간호했던 선생님은, 아기를 낳..
무엇보다 몸이 부쩍 무거워졌다. 될 수 있으면 많이 걷고 움직이는 편이었고, 그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이젠 좀 무리다 싶은 느낌이 든다. 아침 저녁으로 좀 붓고, 밤에 잠을 잘 못잔다. 몸 속의 생명이 커 갈수록 내 몸이 부대끼는 거겠지. 그래도 오래 갈 괴로움은 아니다, 싶으니 참을 만하다. 임신 초기 입덧은 언제 끝날지 몰라서 허둥댔는데, 원하지 않고 예기치 못한 몸의 고통에도 마음이 조금씩 적응을 하는 것일까. 힘들지 않게 낳으려면 많이 걷고 움직여야 한다는데, 일단은 종강부터 해두고 본격 운동에 돌입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종강은 다다음주 월요일. 그 때까지 얌전히 뱃속에서 쑥쑥 자라기만 해주렴. 물론, 내가 원하는대로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자꾸 까먹는다. 이걸 호르몬의 영향이라..
오늘 오후, 모성수행과 자녀교육지원 관련 논문 두 편을 내리 읽었다. 예전과 달리 '모성'이랄지 '자녀'랄지 이런 말들이 그저 거리를 두고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를 열고, 이렇게 뭐라도 써야겠다는 심정이 되었는지도.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이런 질문은 황홀하고도 무섭다. 어린 시절, 그 포근하고 마냥 좋았던 엄마품을 그려보면, 황홀해지지만,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라는 존재가 '엄마'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에 까지 생각이 가닿으면 한없이 마음이 복잡하고 가끔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도 느끼게 된다. 아직도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닿지도 않으니, 어떤 반응을 받고 그로부터 특별한 감정을 일으킬 일도 없다. 종일 들썩들썩 콩콩 뱃 속에서 움직이긴 하지만, 다른 일에 바쁘거나 뭔..
- Total
- Today
- Yesterday
- 감기
- 기억
- 토론토
- 논문
- OISE
- 가을
- CWSE
- 열등감
- UofT
- 일다
- 박완서
- 영어
- 교육사회학
- Toronto
- 봄
- 토론토의 겨울
- Kensington Market
- 선련사
- 졸업
- 일기
- 봄비
- 켄싱턴 마켓
- 인터뷰
- 아침
- 맥주
- 일상
- 교육대학교
- 엄마
- 인도
- 여행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