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숨이 차오르는 데에도 호흡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을 때가 있다. 갈증이 심한데 물을 얼른 마시지 않고 밍기적거릴 때도 있다. 쉬가 마렵거나 쉬고싶을 때도 바로 욕구를 채워주지 않고 미룬다. 비로소 심호흡을 하거나 물을 마시고 나서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혹은 바로 이거였지, 하고 금새 기운이 나기도 한다.어쩌면 지금 여기에 머물지 않고 자꾸만 어딘가로 달려가는 마음이 나를 살펴주지 못하고 내버려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전, 좋은 사람 말고 행복한 사람이 되자는 새해 다짐을 했는데. 올해 다짐은 이것, 목 마를 때 물 마시고 숨이 찰 땐 숨을 쉬자. 이것만 잘 해도 올 한 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집 근처에 작은 논들이 있다. 거기에 물이 채워지고 모가 심어지고 개구리들이 노래 하고 바람에 물과 모가 같이 일렁이고 비가 쏟아지고 노을빛이 물들고 모가 자라는 모든 장면이 참 예쁘다는 걸, 작년과 올해 집 근처를 산책다니며 새로이 알게 되었다. 발을 멈추게 하고 숨을 몰아쉬게 하고 눈물을 맺히게 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많은 순간들이 나를 자주 지나간다는 것도 최근에 깨달은 것. 다행히 죽지않고 도망가지 않고 마흔 여덟해를 꽉 채워살았다. 쪼들리지 않고 아프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한 인생. 참 좋은 계절에 태어났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제 남은 날들은 더 자유롭게 살아봐야지, 하고 마음 먹는 생일날 저녁.

꽃이 여기저기 피는 계절. 화려함 때문인가, 사람들이 제일 열광하는 건 벚꽃인 것 같다. 오전에 벚꽃 라이딩을 두 시간쯤 했다. 사람이 적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래도 좋았다, 충분히. 마음이 괴로울 땐 몸을 움직이는 게 확실히 효과가 있다. 오전 라이딩 때문이었는지 간만에 저녁 밥도 많이, 맛있게 먹었다. 왠일로 맥주도 맛있게 느껴져 한 병쯤 신나게 마셨네.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워서 봄이 얼른 오길 바랐는데 멀미 같은 힘듦은 봄이 와도 훅 지나가질 않네. 그저 심호흡을 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볼 뿐.
꽤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다시는 긴 머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다 자르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짧은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 나에게 익숙한 내 모습. 나는 이런 모습의 나를 좋아하는구나. 머리를 자르는 내내 내가 왜 한동안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했을까 생각했다. 이직한 후로 계속 길렀으니... 여기서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는 노력과 무관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럼 지금은 왜 헤어컷을 하고있지? 적응이 끝나가는 건가. 다시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돌아가서 좋다, 다행이다.

오래 된 동네와 논밭이 있는 동네. 올겨울 새로이 발견한 산책길엔 낡고 오래 된 것들이 많이 있다. 이제는 동물도 사람도 살지 않는 목장, 더이상 누구도 어떤 버스도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작은 차도... 오래 된 것들에 깃든 낡은 기운에는 쓸쓸함과 함께 나름의 멋이 있다. 나는 그 낡은 멋과 빛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빛나는 장면들에 눈길을 주며 오래오래 걸었다. 다리는 노곤하게 피로해지고 머릿 속은 개운하게 맑아지는 시간. 이런 산책의 순간들이 참 좋다. 어쩌면 제도 안에 자리잡고 있는 내 삶을 안정이나 안전이라는 키워드로만 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하면 이렇게 새롭고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신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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