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안부게시판에 메모처럼 남겨두었던 기록들. 2012/12/11 01:13 [+154] 시간이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매일매일들. 꼽아보니 집안에서만 아기랑 둘이 지낸지 오늘로 나흘째. 그러니 좀 마음이 지칠만도 하다. 꽁꽁 싸매고 집 앞이라도 나가볼까, 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 모레쯤 날이 풀린다니 정말 아기랑 어디든 좀 나갔다와야지. 아기는 어제부터 옹알이가 늘었다. 제법 인상을 써가며 뭔가 길게 말하고, 내가 노래를 부르면 따라부르는 듯 소리를 낸다. 아고 예뻐라, 소리가 절로 나오는, 빛나는 성장 중의 내 아기. 난 오늘 좀 답답했고 불안하기도 했고 편두통이 심해졌고 피로도 여전하다. 아 그래도 체중이 좀 늘었다. 요즘 아기는 밤에 한시간 반 간격으로 일어나 칭얼대는..
이모가 다녀가셨다. 엄마의 두번째 동생. 삼십대 중반부터 우리집 가까이 사셔서 엄마와 가장 가까웠던 이모.너무 더웠던 지난 여름, 아기를 낳은지 2주밖에 안돼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내게 오셔서 미역국을 끓여주시고 아기 기저귀를 매일 아침 개켜주셨는데, 이번엔 유난히 추운 날들 며칠을 우리집에서 머물다 가셨다.그 사이 나는 엄마되는 연습을 좀 했고, 아기는 단단하게 자랐다. 이모는 시금치 나물이랑 파래무침, 엄마식 찜닭과 쇠고기 국을 만들어주셨다.진짜 오랫만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차려준 밥상을 받으니 입맛이 돈다.가시는 날까지 집청소 알뜰히 해주시고, 잘 지내라며 여러번 거듭 작별인사를 하는 그 눈빛.찡, 하고 마음이 더워진다. 이모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엄마 이야기로 이어진다.우리는 아..
아기가 많이 자랐다. 내일로 꽉찬 20주가 된다. 뒤집기도 곧잘하고 범보 의자에 잘 앉아있는다. 누워서 보던 세상과 다른지 엎드려있거나 앉아있을 때 호기심이 가득한 눈이 된다. 감정 표현이 다양해졌고 표정이 훨씬 다이내믹해졌다. 노래를 불러주면 웃고, 장난을 걸면 그게 장난인 줄 알고 반응한다. 지난 주 월요일엔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한참 아기 옆에 누워 같이 장난을 쳤다. 내가 하는 말도 조금이지만 알아듣는 것 같다. "쮸쮸 먹을까?" 하면 끙끙 앓듯이 우는 소리를 낸다. 누워있는 아기에게 아기띠를 가져가서 "엄마가 안아줄까?" 하면 싱긋 웃는다. 우는 것 말고는 아무 표현도 못했던 아기가 웃고 표정을 찌푸리고 다양한 소리를 내고 노래를 알아듣고 나와 장난을 친다. 이렇게 ..
그제, 논문을 위해 인터뷰를 해주신 N선생님을 뵙고 점심을 함께 먹었다. 지난 2년 사이, 선생님은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예정일을 앞둔 만삭의 임산부가 되었다. 전문직 여성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난 번과 달리, 우리는 아이를 낳는 일, 엄마가 되어 경험하는 것들 그리고 모성모호 정책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겸손하고 통찰력이 깊은, 감성적이라기보다는 이성적인 N 선생님. 나는 이런 여자 어른을 좋아하는구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깨달았다. 식사를 거의 마칠 즈음, 문득, 선생님은 산고(産苦)의 순간에 아버지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큰 딸이었던 선생님의 결혼 즈음 암으로 돌아가셨다.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간호했던 선생님은, 아기를 낳..
오늘 오후, 모성수행과 자녀교육지원 관련 논문 두 편을 내리 읽었다. 예전과 달리 '모성'이랄지 '자녀'랄지 이런 말들이 그저 거리를 두고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블로그를 열고, 이렇게 뭐라도 써야겠다는 심정이 되었는지도.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이런 질문은 황홀하고도 무섭다. 어린 시절, 그 포근하고 마냥 좋았던 엄마품을 그려보면, 황홀해지지만,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라는 존재가 '엄마'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에 까지 생각이 가닿으면 한없이 마음이 복잡하고 가끔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도 느끼게 된다. 아직도 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닿지도 않으니, 어떤 반응을 받고 그로부터 특별한 감정을 일으킬 일도 없다. 종일 들썩들썩 콩콩 뱃 속에서 움직이긴 하지만, 다른 일에 바쁘거나 뭔..
오월의 이즈음, 날씨 참 좋던 주말, 그와 둘이서 경주에 갔다. 하룻밤을 같이 자고 다음 날 아침, 둘이 봄산책을 하는데, 끈만 달린 슬리브리스를 입은 나를, 어머, 하면서도 이쁜 눈으로 쳐다봐주는 그가 있어 좋았다. 이상한 구도이긴 하지만, 카메라 줘봐, 내가 찍어줄께, 하며 나를 사진기에 담아줘서 또 좋았다. 바람이 우우 부는, 양쪽에 나무들이 나래비를 선 길을 멋지게 걸을 줄 아는 그. 언제라도 산책과 담소를 하자면 좋다, 하고 따라나서는 그. 언제나 소녀같은 웃음, 이쁘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 오늘따라 그립다. 아마 오월 경주를 다시 보러가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기억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막내 이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만의 통화. 아마 설명절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이모가 뜬금없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한다. 왜 갑자기 그런 얘기 하냐니깐, 꿈에 엄마가 나와서 "우리 딸래미 힘들 때 도와주면 참 고맙겠다" 했단다. 이모는, 엄마가 내 걱정이 돼서 이모에게 온 거라고 믿으신다. 네, 이모. 나 힘들 때 이모한테 바로 전화할께요, 하는데 왠지 마음이 울컥한다. 그리고 눈물이 주루룩. 엄마는, 이미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데, 여전히 이모와 나를 잇고 있구나, 하는 생각. 가끔, 둘째 이모는 내 조카 다은이를 보면서, 어디 넘어져도 심하게 안다치는 건, 엄마가 돌봐주기 때문이라 하신다. 다은이가 잘 자라는 것은 동생과 올케의 살뜰한 육아 덕도 있고, 동생네 가까이 사시는 ..
간만에 일찍 집에 들어와 8시 뉴스를 보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잠깐 잤는데 꿈 속에서 엄마랑 두런 두런 이야기를. 그러다 잠이 깨는 순간, 아, 엄마가 더이상 내 곁에 없지, 하는 걸 알았다. 일어나 앉았는데, 아직도 이런 착각 하는구나, 내가, 하면서 눈물이 주루룩. 그 다음엔, 꿈 속에서 만난 엄마가 그리워져서, 오랫만에 한참을 울었다. 부재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이 섞여서 눈물이 되었다. 그리곤 눈에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채로 수업 게시판에 들어갔는데, 수강생 둘이서 게시판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아웅다웅. 그걸 보는데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는다. 눈에 눈물을 달고서, 흐흐흐. 이렇게 그리워하며 앉아있다는 거, 내가 죽는 날까지 엄마를 만날 수 없다는 거, 슬프지만, 난 또 이렇게 웃는..
남동생의 이쁜 딸래미가 태어난지 어느새 일 년. 그 녀석 돌잔치 덕분에 오늘, 식구들이 모였다. 잔치 자리에서 든든하게 저녁 먹고, 집에 와서 간단히 한 잔, 그리고 찐하게 또 한 잔 하고 집에 들어오니 두시 반이 넘었네. 아, 나 디게디게 피곤한데, 하는 생각 너머로 살뜰한 식구들에 대한 애정이, 술 한잔 한잔 기울이는 그 순간을 빛나게 만든다. 내가 태어날 때의 시점으로부터 가까운 미래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서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실컷 풀어낸 이 밤의 이 기분. 세수 하고 이 닦고, 내 로션을 이모랑 나눠서 바르는데, 이모가 이렇게 말한다. "난 이런 향기는 좀 외로워서 싫어." 아니, 향기가 외롭다니! 내 머리를 쾅 흔들어대는 이 표현!@.@ 날은 점점 봄으로 가고있고, 이모는 좀더 달콤한 향기..
토론토 생활 백십칠일째 _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주말 내내 흐리고 봄비 오시더니, 오늘은 북쪽 하늘 끝에서부터 개고 있다. 뉴욕 다녀와 발표 준비에 다다다다 달리다가, 주말엔 잠시 쉬었고, 오늘 다시 '업무' 시작. 밀린 메일들이며, 작지만 신경써서 처리해야할 일들, 뭐 그런 것들을 하느라 오후가 휘릭 지나간다. 그래도 해가 길어져서 창밖은 내내 밝다. 지금은 계절이 바뀌는 기간, 두근대며 '봄'을 기다리다가, 알아챈다, '두번째' 겨울을 잘 넘겼구나, 식구들, 친구들, 그리고 옆에 있는 양 덕분이다, 해본다. 혼자 이렇게 남아있는 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지만, 요즘은 그래도, 살아있어서 좋다, 지구의 어느 한 점 위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고, 내 존재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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