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의 열 두번째 생일이다. 12년 전 오늘 이 시간 아이는 내 몸 속에서 나와 몸을 씻고 아마 처음으로 젖을 먹었을 거다. 손도 얼굴도 발톱도 코도 귀도 다 작았던 아이가 지금은 길쭉하게 자란 6학년 학생이 되었다. 하루하루 어떻게 흘러가서 지금 이 순간에 이른 건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유튜브에서 찾아듣던 아이가 며칠 전엔 보컬을 맡은 이 가수 노래를 너무 잘한다며 공연은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내게 물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미 에이즈로 사망했다고 말해주니 에이즈라는 병이 무슨 병이냐고 그 병 때문에 인류의 큰 즐거움이 사라졌다며 화를 냈다. 아아- 좋은 음악이 뭔지, 그 음악을 즐기는 게 어떤 건지, 누군가의 죽음이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인지 헤아릴 줄 아는 존재가..
집 근처에 작은 논들이 있다. 거기에 물이 채워지고 모가 심어지고 개구리들이 노래 하고 바람에 물과 모가 같이 일렁이고 비가 쏟아지고 노을빛이 물들고 모가 자라는 모든 장면이 참 예쁘다는 걸, 작년과 올해 집 근처를 산책다니며 새로이 알게 되었다. 발을 멈추게 하고 숨을 몰아쉬게 하고 눈물을 맺히게 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많은 순간들이 나를 자주 지나간다는 것도 최근에 깨달은 것. 다행히 죽지않고 도망가지 않고 마흔 여덟해를 꽉 채워살았다. 쪼들리지 않고 아프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한 인생. 참 좋은 계절에 태어났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제 남은 날들은 더 자유롭게 살아봐야지, 하고 마음 먹는 생일날 저녁.
꽃이 여기저기 피는 계절. 화려함 때문인가, 사람들이 제일 열광하는 건 벚꽃인 것 같다. 오전에 벚꽃 라이딩을 두 시간쯤 했다. 사람이 적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래도 좋았다, 충분히. 마음이 괴로울 땐 몸을 움직이는 게 확실히 효과가 있다. 오전 라이딩 때문이었는지 간만에 저녁 밥도 많이, 맛있게 먹었다. 왠일로 맥주도 맛있게 느껴져 한 병쯤 신나게 마셨네.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워서 봄이 얼른 오길 바랐는데 멀미 같은 힘듦은 봄이 와도 훅 지나가질 않네. 그저 심호흡을 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볼 뿐.
꽤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다시는 긴 머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다 자르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짧은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 나에게 익숙한 내 모습. 나는 이런 모습의 나를 좋아하는구나. 머리를 자르는 내내 내가 왜 한동안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했을까 생각했다. 이직한 후로 계속 길렀으니... 여기서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는 노력과 무관하진 않을 것 같다. 그럼 지금은 왜 헤어컷을 하고있지? 적응이 끝나가는 건가. 다시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으로 돌아가서 좋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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