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인천에서 컨설팅 회의, 오후엔 서울 안암동 학회에 갔다가 저녁 시간이 좀 지나서야 수원에 도착했다. 배 고프고 지치는데 뭘 먹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식당들이 많은 쇼핑몰로 갔다. 늘어선 식당들 중 칼국수가 눈에 띄어 거기로 들어갔다. 종일 비가 많이 오던 날이라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다행히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는 칼국수였다. 천천히 국수를 후후 불며 만족스럽게 한 그릇을 먹었다. 적절한 포만감을 느끼며 아이쇼핑을 하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그쳐도 습기는 가득한 여름밤의 풍경이 이렇게 근사한 거구나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지난 목요일의 장면들. 이제야 그 시간들을 돌이켜본다. 요즈음 지칠 정도로 바쁜 건 아니지만 해야 할 일들이 나를 채우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
수업이 많아지니 빠듯한 매일을 살게 되고, 이 빠듯함이 나를 지치게 한다. 하루에 해야할 일의 양과 종류가 넘쳐날 때 일이 재미없어지는 것도 알겠다. 내가 과부하 상태가 되는 조건이 어떤 건지 매번 놓친다. 거절할 수 없어서 맡은 일이 나를 갉아먹는다. 권력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맡은 수업이 부담이 되어 몸도 마음도 힘들게 한다.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일을 맡긴 그 사람에게 원망의 마음이 부글부글 올라온다. 이제 다음 주면 모두 종강. 그 때까지 지쳐 나동그라지지 않고 잘 견딜 수 있을까. 지혜롭게 에너지 배분을 잘 해봐야지. 부디.
이사 온 새 동네는 집에서 5분 안에서 닿을 수 있는 작은 숲이 있어서 참 좋다.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그 작은 숲을 틈 내어 산책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꽃과 나무, 풀, 햇살, 바람을 보고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책을 하고나면 숨이 좀 트이기도 하고 기분도 전환되고 몸도 조금 가벼워진다. 그리고 핸드폰엔 산책길에 만난 꽃과 나무 사진들이 늘어난다. 오늘은 아이와 둘이 오전 시간 그 숲 산책을 했다. 집 앞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해가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한 시간에서야 숲에 도착했는데도 나무 그늘 덕분에 숲 공기는 청량하다. 짧은 거리 걷다 왔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이는 나처럼 휙휙 걷지 않고 이것저것 만지고 타고 머물고 논다. 언젠가부터 자신은 이제 아이가 아닌 양 굴지만 숲에서 ..
지난 월요일 시작된 감기가 토요일인 오늘까지도 이어진다. 처음엔 코와 목이 아팠다가 콧물이 줄줄 나오고 목이 다시 아팠다가 노곤하게 몸이 까라지던 증상들을 지나 이제 회복기인 것 같긴 하지만. 감기 와중에도 수업 하고 밥 해먹고 출퇴근하고 회의도 했다. 그제 저녁 수업이 넘넘 힘들어서 고비이긴 했지만 무사히 퇴근해서 잘 자고 어젠 휴일이라 잘 쉬고 오늘도 쉬멍놀멍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몸이 아플 때 마음도 괴롭다. 아프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힌다. 목요일 저녁 수업 끝나고 도무지 퇴근할 기운이 안나 등나무 벤치에서 잠시 쉬다가, 덜렁 그 벤치 위에 누워서 등나무 꽃과 잎과 가지 그리고 흐린 하늘을 보았다. 아프도 괴로워도 이건 내 삶이지, 도망칠 수가 없네, 하고 다시 힘을 냈던 그 순간. 아프고 괴..
오늘 아침 호수 산책을 하다 만난 풍경들. 간밤에 막걸리 딱 세 잔 마셨는데 몸도 마음도 가라앉길래 아침부터 긴 산책을 했다. 볕은 찬란히 빛나고 하늘은 맑고 물빛은 묘하게 푸르고 벚꽃은 만개하고 여린 연두잎들은 바람에 살랑거리는 연한 봄. 온 몸으로 그 봄 기운을 마셨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숙취가 나아졌다. 누군가 페북에 1분기 결산 기록을 올렸던데, 나에게 1월, 2월, 3월은... 기운을 찾아가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소진되어 도무지 회복될 거 같지 않던 체력과 마음의 힘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는 시간. 십여년 동안 나에게 거의 없던 시간적 여유와 긴 기간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드디어 조금 생겨난 것 같고, 새로운 욕구들이 슬몃 고개를 들고 있다. 연한 봄처럼 다시 살아나고 살아내고. 그렇게 ..
좀전에 세수하고 나오다가 욕실에 쌓인 먼지들이 눈에 들어와 갑자기 청소를. 세면기와 욕실 바닥 때와 먼지를 닦고 씻으며 올겨울 내내 욕실 청소를 한 번도 안 했다는 걸 깨닫는다. 중간에 계절학기 때문에 분주하긴 했지만 이번 겨울방학은 거의 집에만 붙어있었는데. 지난 두어달 간 내 상태가 바닥이었다는 걸 욕실에 쌓인 먼지를 보고 알아챈다. 내가 어떤 상태였나 돌이켜본다는 건 조금 나아졌다는 의미일까. 한동안은 더 오래 가라앉아있어야 나아지는 것일까. 어쩌면 나아지는 때는 영영 오지 않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열심히 청소를 했다. 일단은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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