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게 아프다. 심하게 체해서 며칠 째 골골. 죽 먹고 약 먹고 자고 일어나는 걸 반복하며 속상하고 우울한 날들.
분명 제주현대미술관을 검색해서 갔는데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로 알려준 곳은 김창열미술관 주차장이었다. 제주현대미술관까지는 400미터 거리. 왜 여기로 나를 안내했지 싶었지만 날도 좋고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천천히 걸었다. 낮은 돌담들과 나무들 꽃들이 볕과 바람 속에 가장 예쁜 모습으로 놓여있던 길. 그 길 걸으며 참 좋았다. 네비게이션이 나를 위해 걷는 시간을 준 것처럼. 언제나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길로만 갈 필요는 없지. 둘러갈 때도 있고 헛짓 하며 엉뚱한 곳을 들러 갈 수밖에 없는 순간들도 있지만 그것도 그 나름으로 참 좋을 수 있다는 걸, 그 길을 걸으며 새삼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이번 여행 자체가 그랬네. 항공권을 뒤늦게 예매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허둥지둥이었지만 충만한 시간들..
올가을 수업 중 가장 부담스러운 강의는 평생교육원에서 의뢰 받은 '젠더 갈등' 수업이었다. 학생이 아닌 시민을 대상으로 5회 연속으로 수업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 고민이었고, 강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새로 공부해서 강의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다. 오늘 5강의 중 네 번째 수업을 했고, 그동안 힘들었던 걸 잠깐 까먹을 정도로 수강생들로부터 힘을 받는다. 저출생 관련 기사를 읽고 젠더 관점에서 분석을 해보라는 숙제를 지난 주에 내드렸는데, 그걸 대 여섯 분이나 열심히 해오셔서 날카로운 분석을 하셨고, 강의 시작 땐 입을 떼는 것도 어려워하던 분들이 이젠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켜고 목소리를 낸다. 내가 강의를 할 땐 눈빛을 반짝이며 듣는 게 느껴지고, 저녁 수업인데도 졸면서 듣는 사람이 없다. 아마도..
차 안에 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타닥타닥 차 천정과 빗방울이 만나는 소리. 아득하고 낭만적인 저 소리.
오늘 낮, 4박 5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맞으려고 기차역에 나가 기다리다가 문득 엄마 생각. 고등학교 졸업 후 집 떠나 살며, 기차 타고 엄마집에 갈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기차역에서 나를 기다렸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걸어 출구로 나가면 목을 빼고 기다리다 나와 눈을 맞추고 씩 웃으며 내게 다가오던 엄마.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거기 그렇게 서있었던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그걸 한 번도 생각 해보지 못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아이가 타고 온다는 기차 도착시간이 살짝 지나니 사람들이 출구로 나오기 시작하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그리고 약간 초조해진 채,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를 찾는다. 사람들 사이로 아이가 내 눈에 보이던 순간 나도 엄마처럼 씩 웃고 아이..
해 지는 걸 보고싶어서 저녁상 대충 치워놓고 나왔는데 오늘 저녁 하늘은 구름이 가득. 서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조금 물들고 구름이 천천히 흘러간다. 아파트 단지 안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고 스탠드 계단에 앉으니 아직 낮의 열기가 남아있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아쉬운 것은 한 번도 그의 마음을 찬찬히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거. 둘이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난 두려웠던 것 같다. 그가 이야기할 그의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할까봐. 내가 바라던 사랑과 관심이 그의 마음에 한 톨도 없을까봐. 이제 그는 없고 난 영원히 그로부터 상처조차 받을 수 없다. 이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마음은 용기 내어 들어보려고 한다. 설사 그게 상처를 줄 말이라 해도 그걸 소화시켜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내가 너무 보잘 것 없이 여겨져서 타인이 나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때, 혹은 보잘 것 없는 나도 괜찮다고 수용해줄 때, 비로소 안심이 되곤 했다. 나는 연구를 잘 못해도 괜찮은 나인가요. 나는 집안일을 잘 못해도 괜찮은 나인가요. 나는 성격이 모나도 괜찮은 나인가요. 그런데 저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형이 될까봐 두려워서 질문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완전히 무너질 순간이 되어서야 묻곤 했던 저 문장들에 대해 다행히도 긍정 답을 많이 얻었다. 그게 힘이 되었을까. 이젠 조금은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는 답이 없어도 많이 불안하지 않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되어서랄까. 그러고보면 나의 저 이상한 질문들에 예스,를 외쳐준 사람들이..
어제까지 앓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샤워하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쇠고기 넣고 미역국도 끓인다. 베란다 창틀에 핀 채송화 사진도 찍고 써야할 원고의 기초 분석도 시작했다. 실은 오늘도 컨디션이 안좋지만 힘을 내어 회복의 단계로 들어가본다. 회복. 전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되찾는 것. 그렇다면 사실 회복이라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닐까. 어떤 경험이 지나간 몸과 마음은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긍정 부정 여부를 떠나서. 그저 회복되었다고 믿을 뿐 실은 변화를 겪은 나는 그 변화 이전으로 못돌아간다. 그게 무엇이든 되찾을 수도 없다. 내가 겪고 지나온 것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걸까. 지독하게 앓고 난 내 몸은 더이상 이전의 내가 아닐텐데 그럼 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그런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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