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확진이 되어 온몸이 흐물흐물 아프다. 아침 먹고 기력이 없어 한숨 잤는데 꿈에 엄마가 나왔다. 정확히는 엄마랑 통화를 했다. 엄마는 경상도 어디쯤 살고 나는 서울 어딘가 사는 듯 했는데 주말에 엄마랑 대전쯤에서 만나자고 했다. 별 재미없이 산다고 귀찮은 일들 밖엔 없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그게 좋은 거라 이야기했다. 큰 걱정없고 아프지 않은 삶. 크게 반갑게는 아니라도 주말 만남을 기대하는 듯 엄마 목소리가 밝아졌다. 거기 까지 말하고는 잠에서 깼다. 일어나서야 엄마는 돌아가셨지, 알아챈다. 눈물이 후두둑,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보고싶은 엄마.
나흘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아이는 금요일 밤 정점을 찍었고 그 후론 점점 나아지고 있다. 그날 밤엔 해열제가 안 들어서 다른 성분의 약을 한 번 더 먹이고 물수건으로 오래오래 몸을 닦아줬다. 열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던 아이는 찬 수건이 몸에 닿으니 편안해했다. 그렇게 여러 번 닦아주고 나니 열이 좀 내려 이내 잠이 들었다. 엄마는 나한테 코로나 옮을 수도 있는데 왜 내 옆에 와서 이렇게 나를 닦아주는 거야? 고열 때문에 눈까지 빨개진 아이가 내게 저렇게 물었을 때 내 대답은 당연했다. 니가 아픈데 엄마가 어떻게 안 보살피겠노. 설령 내가 전염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픈 아이가 우선인 것. 그게 내 몸에 밴 엄마 노릇이다. 금토일 사흘동안 아홉 끼니를 해 먹이고 빨래 돌려 널고 베란다 화분 정리와 물청소를 했..
유난히 길었던 한 달. 아마 그 시간동안 내가 나를 많이 들여다봐서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엄청 울었고/울고 있고, 어느 때보다 혼자 많이 생각하고 말했던 것 같다. 여행도 다녔고 방학 중이었지만 일도 무진장 했네. 시간의 주름 사이사이로 많은 것들이 쌓이고 지나간 팔월이 끝나고 새로 맞은 구월. 뭔가 새 기운이 휘릭 생겨날 줄 알았는데 오늘 개강 첫주를 잘 마무리하고 집에 오니 아이는 열이 나고 나도 몸이 가라앉네. 역시 인생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과 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것. 흐흐.
20분쯤 요가를 하고 나니 몸이 더워져, 잠깐 나가서 좀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잠들었을지도 모르니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숙소 불빛과 가로등이 있지만 밤의 숲은 어둡다. 서너 종류가 넘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물이 흘러가는 소리도 제법 크다. 바람이 살랑이는 게 기분 좋아서 입고 나갔던 얇은 점퍼를 벗었다. 몸으로 밤 숲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은. 가만히 눈 감고 숲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밤 하늘을 본다. 멀리 빛나는 별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분간하기 어려운 어두운 형체들. 조금 무섭기도, 조금 편안하기도. 그리고 밤 숲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 점심 먹고 들렀던 산골짜기 까페에서 만났던 여성 노인이 나에게 문득 물었던 그 문장이 생각난다. "여기까지 뭐하러 오셨어요?" 이 ..
오늘은 아이 학교 개학날. 이번 여름방학을 돌아보니 내겐 참 힘든 계절이었다. 많이 우울했고 더위 때문에 몸이 많이 힘들었고 많이많이 울었던. 그 와중에도 계절수업을 해내고 매일매일 아이 끼니를 열심히 챙겨먹였다. 찬이래 봤자 콩나물 무침이나 미역국, 호박전이나 카레라이스, 김칫국과 쇠고기국, 계란찜과 오이냉채 같은... 흔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지만 언제나 정성 들여 만들어 먹이려 애썼다. 반찬을 만들고 상을 차리면서 머리로 하는 일에서 해방된 순간을 즐기기도 했고 손끝으로 완성되어 다시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 하고 먹기 과정을 처음으로 신기하다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담주면 나도 새학기를 시작하고 가을 내내 수업과 연구, 다른 과업들로 정신없을 것 같지만. 정성 다해 반찬 만들어 먹이고 소박한 밥..
나 혼자 강의 준비해서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는 것 같지만 내가 수업 하나를 하기까지 수많은 존재의 도움과 돌봄을 받는다. 그간 이론을 축적하고 논문과 책을 발간해온 선후배 동학들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고 강의실을 배정하고 수업할 수 있도록 해준 교무처 직원들과 시기마다 교수자가 해야할 일을 일러주는 조교 선생님들까지. 무엇보다 큰 도움과 돌봄의 주체는 사실 학생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저 수업을 들으러 오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살피고 도우며 강의를 하는 나를 돌봐주기도 한다. 일체중생과 천지만물의 은혜 속에서 살아간다는 원리는 수업에서도 마찬가지. 누군가의 돌봄노동 없이는 한 순간도 지내기 어렵다는 돌봄이론이 수업을 준비하고 굴려가는 일에도 찰떡처럼 적용되는 것. 그러니 언제나 감사..
살짝 불린 미역과 국거리로 잘게 썰은 쇠고기를 냄비에 넣고 국간장과 참기름 조금씩 부어 달달달달 볶으면 미역국 만들기의 반은 끝난다. 미역과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 조금 넉넉히 물을 부어주고 팔팔 끓이다 간을 보고나면 미역국은 완성된다. 어제 잠을 잘 못자 오전 내내 피곤했는데. 점심으로 보글보글 끓여 국물이 잘 우러나온 미역국 한 그릇에 밥 말아 김치랑 먹고 나니 땀이 훅 나면서 배가 든든해지고 마음에도 배짱이 생긴 것 같다. 그러고보니 며칠만에 제대로 먹었다는 느낌. 대단하고 놀라운 미역국 한 그릇의 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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