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제주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고싶다고 생각했었다. 면허를 따고 차를 사게될 날이 올 거라 예상치도 못했던 때였는데. 면허를 처음 땄을 때, 제주도 가서 운전하면 좋겠다 생각하며 설렜다. 이번 여행에서야 그 해안도로를 운전해 돌아다녔다. 숙소가 있었던 비자숲 근처에서 한동리 바닷가 옆길로 들어가 세화-평대-성산까지 이어지던 그 길. 왼편엔 푸른 바다가 있고 오른쪽엔 검은 돌과 검은 흙 밭이 있던. 간간이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파란 하늘이 멀리까지 펼쳐져있는. 보조석에 앉아있을 땐 경험하지 못했던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충분하진 않지만 거기엔 자유의 감각이 있었다. 내가 스스로 이 길을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자유. "자유란 편함이나 선택항목의 많음이 아..
종일 바람을 많이 맞아서 피곤한 저녁. 사진 속 햇살과 구름, 바다는 평온해보이지만 내내 바람이 무섭게 불었던 하루였다. 그래도 종일 많이 웃었다. 아침 비자림 산책도 좋았고 숙소까지 걸어오다가 만난 까페 커피도 참 맛있었다. 점심 전복죽, 시흥리 바닷가, 파장 중이던 세화오일장, 한동리 바닷가, 잠깐 들른 ㅅㄴ언니네도 다 좋았다. 렌트카로 성산 평대 세화 한동을 잇는 해안도로를 운전하던 순간들, 숙소가 있는 비자림 근처까지 이어지던 나무터널 길도 멋졌고. 아이랑 둘이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둘이서만 이박삼일을 지내는 건 처음이고 이렇게 멀리 둘이 온 것도 처음이다. 여행계획 세울 땐 신이 났는데 막상 둘만의 여행이 시작되려하니 겁이 나고 긴장이 되었다. 특히 어제 저녁 낯설고 작고 허름한 숙소에 도착했..
어젠 해가 조금 나왔고 일몰도 슬쩍 보았고 한동리 바닷가에서 보름달이 바닷물에 비친 윤슬도 봤다. 바다 위로 동그랗게 뜬 달빛이 은은하고 서늘하고 담백하고 고요하게 바닷물 위로 일렁이는 그 장면은 아마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 때 내 곁에 있던 아이, 오랜 친구인 ㅅㄴ언니. 우리 셋 모두 조용히 그 윤슬만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오늘 아침은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다. 어제 옮겨 온 작은 숙소의 부엌창으로 보는 아침 해도 잔뜩 흐린 하늘 가운데 얼굴을 보여줬다 말았다 한다. 멀리 보이는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주민이었다면 외출을 삼가할 날씨이지만 바람 부는 비자숲과 5일만에 하루 선다는 장터, 이제서야 알게 된, 보말이 그득한 바닷가를 열심히 돌아다닐테다. 아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까페에서 가만히 ..
금요일 오후에 와서 사흘을 잤으니, 오늘은 여행 나흘째. 첫날은 저녁에 도착해서 저녁(생선구이와 미역국, 전복 뚝배기) 먹고 숙소에서 쉬었고, 둘째날은 수영-점심(고기국수와 돼지국밥)-이호테우해변-동문시장-제주국립박물관 순서로 다녔다. 그날 밤, 516 도로를 넘어 서귀포에 가서 두 번째 숙소 봄스테이에서 묵었고, 셋째날 아침 숙소 뮤지엄에서 보았던 작품이 엄청 압도적이어서, 70년만에 온다는 이중섭의 원화 전시를 놓쳤지만 덜 아쉬울 정도. 봄스테이 정원 산책도 좋아서, 이 숙소엔 다음에 다시 오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엄 전시도 다시 보고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고. 섶섬 앞 짧은 올레길, 해안도로 작은 식당에서의 점심은 소박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비오는 쇠소깍에서의 보트타기는 무서웠지만 재미있었고..
해가 떨어졌지만 하늘은 여전히 옅은 하늘색인 초저녁, 아이랑 손 잡고 장보러 갔다. 집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있는 생협 매장에 가서 버섯과 과자, 야채와 과일, 고기를 조금 사왔다. 피곤할 때 마시면 힘 나는 쥬스도 작은 걸로 샀다. 이제 열 한 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나에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장바구니가 적당히 무거워 걸어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져서 그 순간들이 좋았다. 별나게 좋을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마음의 힘을 내어 담담히 살아내는 내가 좀 마음에 들었던 그런 순간. 어제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와 엄청 피곤했고 며칠 째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팠지만 아이 세 끼를 챙겨주고 자잘한 일들도 두어개 처리하고 밀린 연락들도 했다. 아직도 마음은 바닥 어느쯤 머물러있지만 그냥 이렇게 살아..
엄마가 오랫만에 꿈에 오셨다. 출근길, 양말과 스타킹을 이상하게 신은 나를 데리고 짐을 많이 들고서 그것들 새로 사서 신을 수 있게 하려고 인천 어딘가 쇼핑몰에 가셨다. 지하철로 가는 길이 나로서는 초행길이었는데 엄마는 환승 지점도 잘 알고 짐 맡겨두는 곳도 잘 알고계셨다. 엄마에게 조금쯤은 화가 난 듯 뾰루퉁한 나를 데리고 간 허름한 쇼핑몰에서 엄마는 양말과 스타킹 파는 코너를 못찾았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생전의 약간 무심하고 카리스마 있던 그런 태도의 엄마. 지금 이 어려움은 크게 보면 사소한 것이라는 걸 잘 알고계시는 그런 자세. 그러나 늘 그렇듯 나를 위한 애씀과 노동을 전혀 아깝다 생각치 않는 모습. 그렇게 엄마랑 다니다 잠을 깼다. 꿈에서 엄마 손을 잡고있었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를 끌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신지 1년. 어쩌면 꽤 괜찮은 컨디션으로 견뎌왔던 건지도 모른다. 지난주부터 상태가 안좋아지셔서 내내 슬펐는데, 오늘은 덜컥 겁이 난다. 설명절이라 안부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안받으시길래 무슨 일인가 두려웠고, 위급해지신 건 아닌가 생각이 미치니 몸이 아플 정도로 겁이 났다. 다행히 곧 통화는 되었는데 초저녁에 다녀온 동생 말에 의하면 병색이 완연하단다. 겁이 난다. 아버지의 죽음을 닥칠 준비가 나에겐 안되어있는데. 아마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대구로 내려가 엄마의 죽음을 알고 바닥에 쓰러져 호흡이 잘 안되어 헐떡였던 그 순간부터의 고통이 다시 몸으로 기억되는 것인지도.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흘러도 고통은 지겹게도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어젯밤 나는 고통도 지나가면 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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