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바쁜 날들 가운데 요며칠은 이게 모두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렇게 써내는 보고서는 어디에서 어떤 데에 닿을 것이며 나를 둘러싼 이 관계들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집에 돌아와 열심히 먹고 반찬을 만들고 부엌 정리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며 손에 잡히는 일상으로도 돌아온다. 잊지 말아야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 먹을 걸 만들고 내일 아침을 준비해두고 아이와 눈을 맞추어야지.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너에게 집중해야지.
저녁을 먹고 아이와 둘이 동네 뒷산을 잠시 걸었다. 소화를 좀 시켜야겠다 싶어 나섰던 길인데 해 지기 전 여름 저녁 풍경이 참 이쁘다. 우린 늘 그렇듯 손 잡고 신나게 걷다가 탐험이라며 가보지 못한 길로 향했고 신기한 것들을 보며 사진도 찍고 위험한 구간도 낄낄대며 지나고 들꽃도 꺾었다. 물론 모기에 몇 방 물리고 집에 와서도 간지러워 긁었고.ㅋ 샤워하며 아이가 이랬다, 엄마가 갑자기 너무 좋아, 엄마 죽으면 제삿날에 묘지에 예쁜 꽃들로 장식해줄께. 그 마음이 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저녁 산책이 우리 마음을 순하게 하고 서로 기쁜 채로 만나게 해주었구나 싶다. 숲으로 들로 틈 날 때마다 자주 같이 가자. 그 시간들 속에서 너도나도 참 기쁘니까.
지난 한 주 내내 혹은 늘 그렇듯 평일에 혹사당한 몸과 마음은 주말의 휴식을 필요로 한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난 몇 년 간 주중이든 주말이든 나의 휴식은 다른 사람에게 육아와 살림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남편에게 부탁을 하는 일이 늘 녹록치 않았고 (부탁을 너그러이 들어주는 일이 거의 없다고 기억한다) 그게 언제나 서운하고 힘들었다. 나의 취약함을 알고있고 그 부분을 채워주려 배려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고 그런 관계 속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포기가 안되었다. 오늘 오전에도 부탁(너무 힘들고 배고프니 점심을 차려달라고 했다. 아침은 내가 밥하고 국하고 반찬해서 차려줌)을 했는데 화를 냈다. 그 반응에 너무 화가 나고 절망스러워 힘들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좀 서늘해진다. 아직도 자립하..
퇴근 후 아이와 둘이 밥 해 먹고 피곤한 저녁을 견디는 게 참 힘들었는데. 지난 일년 여의 시간도 힘들었다. 첫날, 더이상 외롭지도 막막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 신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갈 수록 그녀의 집에 가는 내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예민해서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지만, 그녀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마음이 제일 힘들었던 건 사실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진술들. 아이 돌보며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그녀는 애어른,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 속이 빤한 아이, 어른을 설득시켜 제 멋대로 하는 아이라는 평가와 하소연으로 내게 풀곤 했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을 인정하는 척 하며 아이에게 짐짓 야단을 쳤다. 때로 아이는 엄마..
별 기대 없이 봤는데, 12회쯤부터 엉엉 울면서 봤다. 처음 눈물이 터진 건, 힘든 일을 잔뜩 겪은 날 밤, 혼자 방에 누워 잠을 청하던 준우의 모습이 그려진 장면에서. 그 순간에 준우는 수빈을 떠올린다. 늘 함께 한다는 수빈의 메시지. 그걸 떠올리며 잠이 든다. 외로운 순간과 마음의 기댐. 나이 마흔이 훌쩍 넘고도 나는 여전히 이런 장면에 눈물이 쏟아진다.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말은 참 약하고 아무 것도 아닌 건데, 거기에 기대서 잠이 들고 살아간다. 그게 뭘까. 그게 없다는 건 또 뭘까.
크리스마스 전엔 다 끝내야지, 다짐하며 일했는데, 그 끝과 동시에 독감이 왔고, 그걸 앓고 나니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시무식을 하고 밀린 일을 해내고 지난해 일들을 갈무리 짓고 소화불량이 되고 약을 먹고 쪽잠을 자고 초저녁에 피곤해서 아이를 재촉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고. 변한 것 없는 내 일상. 자다가 깨서 핸폰 들여다보는 것도 다르지 않네. 변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 해준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본다. 조금씩 변하고 있네, 어쩌면.
지난 월요일엔 종일 회의하고 저녁까지 일정이 있었고 화요일과 수요일엔 오후에 4시간씩 면담을 했다. 목요일은 분석 작업하며 하루 보냈고 금요일엔 종일 필드에 있다가 꽤 늦은 저녁 귀가. 토요일은 출근했고 일요일은 집에서 아이 돌보다 밤부터 새벽까지 일했다. 월 화 수 모두 오후에 출장이었는데 발표와 포럼 진행, 강의였다. 장소로 따지면 수원, 안산, 성남. 종횡무진의 나날들이네. 그 사이사이에 밥 해먹고 국 끓이고 샐러드 만들고 장을 봐서 아이를 먹이고 아이 발표회에 가고 아이 겨울 내의와 방한복을 샀다. 후어 장하다 나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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