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쉰 아홉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에게 육십대 여성의 삶은 잘 모르는 영역이다. 마흔 즈음의 엄마는 여전히 예뻤고 멋을 부렸고 매일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오십대의 엄마도 늘 멋을 추구했지. 몸의 노화를 속상해했지만 내가 본 엄마는 언제나 더 멋진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어. 외롭고 우울하고 힘들 수록 더 근사한 중년이 되고싶다. 건강한 몸, 내 매력에 자신있는 눈빛, (나를 포함한)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 삶이 매일 더 좋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끈질긴 기도. 어쩌면 능력이나 돈은 부차적인 것인지도.
육아휴직은 끝났고 어제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하교 후 퇴근까지 세 시간. 아이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 같아서, 어제 새벽엔 마음이 짠했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고 만난 아이도 피곤해보이더라. 둘이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푹 잤다. 자고 일어나니 또 새 아침이네. 나는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고만 살아서, 아이에게 더 애틋한가 싶다. 엄마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하는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할까봐 늘 마음이 쓰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늘 나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한다. 나와 다른 건, 나는 엄마가 필요해, 보고싶어, 라고 이야기하고 요구한다는 것. 그래서 다행이다. 부족할까봐 걱정하는 나에게 괜찮다 말해주는 신호인 것 같다. 문득 궁금하다. 엄마는 어땠을까. 아이 나이 정도의 나와 동생에게 엄마의 애틋함은..
-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보인다. 해야할 일들의 쓰나미 속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니까. 나는 조용한 사람. 사람들 틈에 있을 땐 웃고 떠들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작은 사람. - 커피를 마시면 속이 안좋고 잠이 안오는데 자꾸 마시는구나. 다음 일주일은 마시지 않으며 보내보는 연습을. - 나를 지배하는 가장 많은 생각은 "이제 뭘 해야하지?"이다. 그간 내 일상이 그랬구나, 싶다. 해야할 일들을 클리어하며 보내온 숱한 시간들. -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며 엄마 노릇에 대한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좋은 엄마'에서 '좋은'을 떼는 연습도 하게 되고. 내가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엄마 노릇을 어려워하는지, 그럼에도 꽤 적응했는지..
아이를 재우려고 토닥이는데 내 품을 파고들며 말한다, 엄마가 좋아. 너무 라거나 참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지만 다섯 글자가 깊이 나에게 와서 스며든다. 엄마가 좋아. 응, 나도 니가 좋아, 하고 답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엄마가 좋았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그립고 반갑고 편안하고 좋았지. 나도 그런 엄마가 되었네. 그러나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 뭔가 요구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와 같이 있는 게 편치않은 건 당연한 일이지. 더 좋은 엄마가 되려 할 수록 그 시간이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게 되니까. 어젠 그래서 힘들었고 좋은, 을 내려놓으려 했던 오늘은 그래서 좀 덜 힘들었다. 애쓰지 않고 공..
육아휴직 이일차. 삼십일일 중 이틀이 지나간다. 오늘은 조금 우울해진 나를 만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의 세계에서 비켜나있다는 게 뒤쳐질 것 같은 불안을 가져다준다는 걸 새삼 알았고. 내 마음과 생각은 오래된 습관에 따라 자꾸만 해야할 일들을 떠올린다. 나도 모르게 좋은 엄마 노릇, 질 높은 집안일을 추구하고 있다. 모두 나를 괴롭히는 나의 습관. 브레네 브라운의 테드를 들었고 나에게 내 몸은 무엇인지 고민을 시작했고 더 느리게 지내보기로 마음을 환기시킨다. 읽고 싶은 책이 생겼고 쓰고 싶은 글도 떠오른다. 뛰지 말고 걸어보자. 저속의 생활. 요게 이번 휴직의 모토. 잊지마.
아이랑 마을버스를 타고 등원을 한다. 이번주 목요일까지 그렇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 시절도 끝. 오늘 아침엔 둘이 마을버스를 타면서, 네 살 아이를 안고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던 그 때의 나와 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 때로부터 4년이 흘렀고 우리 둘 다 잘 지내온 거 너무 대견하고 멋지네. 큰 사고 없이 매일 아침 등원하고 매일 저녁 하원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도 벅차다. 아이와 보낼 수 있는 남은 날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고마워. 매일 촘촘히 힘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지옥이 아니라 다행이야. 나도 아이도 자라고 있어서 자랑스러워.
(생각해보니 파장동 집의 시그니쳐 풍경은 바로 이것. 근사했던 부엌창 풍경. 벌써 그립네. - 이사 담날 새벽 덧붙임) 2년 3개월 살았던 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날. 새벽 네시쯤 일어나 연구보고서 쓰다가 다섯시 반부터 집정리하고 씻고 버리고 하다보니 이삿짐 옮겨주시는 분들이 들이닥쳤다. (들이닥쳤다고 쓰는 건, 그분들이 진짜 그랬다기보다는 내 느낌이.) 오래 살지 않았지만 거기 사는 내내 진하게 힘들었기 때문인가...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집에 들어오는 아침볕이라도 한 장 사진으로 남겨둘 껄. 이제는 새 집에 헌 짐 들이는 중. 서운함 가운데 설레임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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