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어두운 밤. 혼자 산책을 했다. 사람 없는 겨울밤 혼자 걸으니 조금 무서웠지만, 오래 걷고 나니 마음이 좀 시원해졌다. 집이 드문드문해지는 길 가에 혼자 불켜진 어느 집. 검푸른 밤하늘 아래 불켜고 앉아있는 집이 단단하고 씩씩해보여 한 컷. 여기 발 딛고 살아가는 건 바로 나,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네, 하는 심정으로. 산책 다녀와 옷 벗으며 거울을 보니 추위에 얼굴이 발그레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살피고 돌봐주고 나답게 사는 것. 나다울 때 가장 맘에 드는 나. 까먹지 말아야지.
아이가 아프다. 올겨울 들어 두번째 독감. 어떤 할재가 그랬는데. 아이가 아픈 건 전적으로 엄마 잘못이라고. 그 말 들을 땐 이건 무슨 개소린가 싶었는데 아픈 아이를 보면 자책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어린이집에서 다시 유행인 독감은 내 능력 밖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 잘 먹이고 더 잘 쉬게했다면 독감에 안걸렸을까, 하고 만약을 자꾸 생각한다. 자책과 우울이 섞인 마음이 나를 덮친다. 이럴 땐 백팔배를 하거나 산책을 하면 좋은데 내일까지 해야할 일에 쫓기는 y와 아픈 아이는 나를 돌봄과 살림 노동에 딱 붙어있게 만드네. 지금 나에게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한데. 풍선 속 공기처럼 답답하다..
작년 초 일본 여행은 여러모로 고됐다. 직접 여행 루트를 짜야했고 낯익으면서도 실은 낯선 직장동료들과 함께 해야했고 일정도 빡빡했다. 급기야 약간의 갈등 때문에 마지막엔 좀 서먹하게 헤어지기까지 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지나고 나니 그 때의 시간들이 좋았던 느낌으로 되새겨진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의외의 장면들이 있다. 하나는 M선생님과 둘이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오전의 햇살이 드리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동네 버스정류장에서의 우리 모습이 왠지 그립다. 오늘 아침 떠오른 또 하나의 장면은, 눈덮힌 돗토리현을 다녀오던 길,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만원 미만의 점심을 먹고 나와 작은 과일 가게에서 귤을 사던 장면. 한 봉지에 몇 천원 안했는데 엄청 맛나서 와 맛있다 했던 그 때. 배는 적당히 부르고 오늘..
오늘 출장이 예정보다 세시간쯤 빨리 끝났는데 집에도 회사에도 가지 않고 산책하고 차를 마셨다. 집엔 독감 걸린 아이가 있었고 회사엔 밀린 일이 있었지만 아이는 시어머니가 돌보고계셨고 회사일은 나중으로 미뤄도 큰일 날 것 아니었다. 며칠 계속되던 지독한 미세먼지가 조금 걷혔고 날도 푹했다. 어딜 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 도시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발걸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자유를 줬더니 물가를 걸어 근사한 풍경을 지나 맘에 드는 까페에 갈 수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딱 세시간, 내 자유시간. 그 시간동안 들이킨 달콤한 자유 덕분에 오늘 저녁은 기분이 좋다. 간만에 내 안에 에너지가 채워진 느낌. 평소보다 많이 걸어서 조금 피곤하지만, 그래도.
일터의 심포지엄이 끝났다. 소위 흥행에 성공한 건 아니지만, 강연과 발표 하나하나 다 좋았다.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 많은 분들을 모셨기 때문이고 다행히 참 성실하게 준비해주셨기 때문이다. 또 다행스러운 건 청중 수준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 강연, 발표, 토론 들으며 나 자신이 많이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이 났고 큰 사고나 실수 없이 잘 마무리돼서 감사하고 좋은 시간이었다. 아 그리고 평소 존경하던 혹은 관심있던 분들 발표자 토론자로 직접 만나 인사하는 것도 좋았고. 그런데 행사 다 끝나고 저녁 먹으며 깨달았다. 진짜 좋았던 건, 주변에서 이 주제를 탐탁치 않게 혹은 무관심하게 봐왔지만, 새로운 주제를 다루느라 섭외가 참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
일터 심포지엄 섭외가 드디어 끝났고, 오늘은 1박2일로 여행을 떠난 아이가 돌아온다. 그런데 내 몸은 열이 나서 으슬으슬 아프다. 오늘 꼭 해야할 일이 있어 겨우 출근해서 후다닥 할 일들을 처리하고 이제 집에 가려는 중이다. 몸이 다 뻗을 자리를 보고 아픈 거다. 잠시 아파도 될 타이밍. 고통이 극심할 때, 긴장될 때는 오히려 아프지 않더라. 쉴 타이밍이 돼서 몸이 표시를 해준다. 술약속이 있다던 양이 일찍 들어온단다. 일터의 N 샘은 죽과 약을 사다줬다. 집에도 데려다 준단다. 팀 사람들이 얼른 들어가 쉬란다. 일체중생의 은혜 안에서 사는구나. 겸손해지고 작아지는 타이밍.
오줌이 마려워 잠이 깼는데 일어나보니 속이 안좋은 걸 알겠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지나치게 피곤했던 것도 점심 저녁 이어서 과식을 했기 때문이었구나 뒤늦게 안다. 나쁘지 않았지만 피곤했던 주말. 그 시간이 몸에 남았구나. @ 남원 요천수 위로 내리는 노을 지난 일주일도 전력질주를 했던 것 같다. 월요일엔 퇴근 후 면담을 했고 화요일엔 아이가 아파서 남편이 휴가를 냈다. 수요일엔 아이 어린이집 방모임이 있었는데 새벽에서야 집에 들어왔고 목요일엔 일터에서의 스트레스가 심해서 금요일 아침까지 우울했다. 토요일 아침 바느질 모임을 하고 남원 1박2일 여행까지 마치니 일요일 밤. 아이 컨디션은 조금 나빠졌고 난 소화불량에 피곤이 더해졌지만, 일주일이 끝나는 이 시점은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 어제 광한루에서 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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