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 박완서 선생님이 학교에 강연을 오신 적이 있다. 대형강의동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을 뚫고 들어가 선생님이 잘 보이는 앞쪽 계단에 앉아 강연을 들었다. 그 날, 가방에 넣어간, 에 싸인을 받고,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선생님, 저요, 선생님 소설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하는데 그냥 씨익, 웃으시던 표정이 기억난다. 장편 한편 정도는 더 쓰실 줄 알았다. 이렇게 떠나실 거라 생각을 못해서, 허전하고 슬프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의 부음을 듣기 전 날 을 다시 읽었다. 간만에 잠이 쉬 오지 않던 그 밤, 뭔가 답을 찾고 싶어 책장을 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강연 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수치와 열등감, 부끄러움이 당신 문학의 밑바탕이라고. 그걸 소설을 통해 직시하기 때문에 자기고발과 반성이 가능한 거라..
1. 지난 밤엔 간만에 늦게까지 깨어있었어요. 자정 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잘안되더라구요. 한참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작은방에 책 들고 가서 좀 읽었어요. 영문판을 좀 보다가, 간만에 박완서가 읽고싶어져서 을 다시 봤습니다. '시'와 '사치'로 전쟁을 견디고, 서로에 대한 몰두의 힘으로 궁벽을 견뎠던 젊은 연인의 시간들. 오십년이나 지난 뒤 그걸 다시 돌아보는 노인의 시선이 서늘하고도 뜨거웠어요. 박완서 특유의 냉정한 성찰의 말들은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더군요. 그래도 사랑이야기라 그런지 마음이 노골노골해져서, 이내 긴장이 풀리고 졸음도 밀려왔답니다. 2. 어제 저녁엔 용산참사 2주기 추모 문화제에 갔어요. 서울역 광장에 모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날씨는 무지 추웠습니다. 참사가 일어..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냇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 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 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 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
토론토 생활 십이일째 _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어제 저녁에 를 읽다가, 뒤에 붙은 김윤식 선생님의 작품 비평을 봤다. (역시 대가의 소설엔 대가의 비평이 붙는 건가. 소설도 소설이지만 이 비평도 참 재밌다.) 이 비평에서 김 선생님은 기억에 의존하여서만 썼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이 작품이야말로 소설다운 소설임을 치하하며, 헤밍웨이를 인용하여 소설이란 '남에게는 받아쓰게 할 수 없는 기억'을 쓰는 것이라 설명한다. '남에게는 받아쓰게 할 수 없는 기억.' 소설다운 소설은 바로 이 기억을 묘사한 작품일 것이다. 내 생각엔, 논문다운 논문이라는 것도 바로 이 기억, 남의 글과 말을 빌려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기억을 학문적으로 써낸 글일 것이다. 그래서 좋은 논문이란 가장 주관적인 주제로부터 출발..
제40회 관악초청강연 “나는 왜 쓰는가: 내 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연사: 박완서 (소설가) 2009학년 2학기 두 번째 에서는 2009년 11월 12일(목) 오후 3시에 박완서 소설가를 연사로 모십니다. 박완서 선생님(78)은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에 장편 이 당선돼 등단한 뒤 9권의 소설집과 15편의 장편소설 등을 펴내시면서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해오셨습니다. 이번 을 통해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세계와 삶, 그리고 열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강연과 여러 패널 선생님의 토론을 통해 한국 문학의 살아있는 '거목'을 만나는 자리에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는 서울대학교가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지도자급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 속에서, 학생들에게 학..
박완서 작품 나목 1970 세모 1971 어떤 나들이 1971 다이아몬드 1972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1972 부처님 근처 1973 주말농장 1973 - 중산층 여성들의 자모회에서 시골에 야유회. 불안과 불만. 지렁이 울음소리 1973 닮은 방들 1974 - 내 집 마련을 꿈꾸었으나 정작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자 획일성에 신물이 남. 맏사위 1974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974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1974 연인들 1974 이별의 김포공항 1974 재수굿 1974 겨울 나들이 1975 도둑맞은 가난 1975 도시의 흉년 1975 서글픈 순방 1975 저렇게 많이 1975 카메라와 워커 1975 배반의 여름 1976 어떤 야만 1976 조그만 체험기 1976 포말의 집 1976 휘청거리는 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남원, 대구가는 버스, 대구, 서울오는 기차, 서울에서 조금씩 읽었다. 이 소설을 떠올리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나서야 내 안의 속물 근성을 인정하게 됐다는 고현정의 어느 인터뷰가 생각난다. 박완서 소설의 대부분은 그 여자들 안에 뿌리 박힌 속물 근성, 소시민주의, 그것들에 대한 부끄러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인정과 그래서 지속되는 삶... 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더더욱.
어제 오후엔 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박완서'를 검색어로 찾은 책이다. 야금야금 그의 소설집을 하나씩 읽는 습관, 한 오년쯤 되었나. 박완서 소설은 나에게 어떤 치료제이다. 깊은 우울 안으로 나를 데려갔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게 한다. 그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이상하고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세상 욕망의 네트워크 밖에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이 이상하고 불안한 것은 너무나도 세속적인 욕망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세속적인 욕망은 언제나 성취되지 못한다. 박완서는 그 당연한 사실을 건조하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청산유수의 아줌마일 줄 알았다. 는 1971년 9월 [월간문학]에 발표된 단편이다. 초가을, 더이상 가족들에게 돌봄을 제..
- Total
- Today
- Yesterday
- Kensington Market
- UofT
- 인터뷰
- 박완서
- 영어
- OISE
- 여행
- 교육사회학
- 봄비
- Toronto
- 봄
- 일다
- 가을
- 토론토
- 기억
- 인도
- 토론토의 겨울
- 켄싱턴 마켓
- 맥주
- 선련사
- 아침
- 논문
- 일기
- 졸업
- 감기
- 일상
- 교육대학교
- 엄마
- CWSE
- 열등감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