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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십이일째 _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어제 저녁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다가,
뒤에 붙은 김윤식 선생님의 작품 비평을 봤다.
(역시 대가의 소설엔 대가의 비평이 붙는 건가. 소설도 소설이지만 이 비평도 참 재밌다.)
이 비평에서 김 선생님은 기억에 의존하여서만 썼다는 박완서 선생님의 이 작품이야말로
소설다운 소설임을 치하하며, 헤밍웨이를 인용하여
소설이란 '남에게는 받아쓰게 할 수 없는 기억'을 쓰는 것이라 설명한다.

'남에게는 받아쓰게 할 수 없는 기억.'
소설다운 소설은 바로 이 기억을 묘사한 작품일 것이다.
내 생각엔, 논문다운 논문이라는 것도 바로 이 기억,
남의 글과 말을 빌려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기억을 학문적으로 써낸 글일 것이다.
그래서 좋은 논문이란 가장 주관적인 주제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고,
세계를 그 주관적인 주제와 기억으로부터 읽어낸 결과물이 바로 논문의 결론이 될 것이다. 

이까지 쓰고,
" 나에게 내 논문이란 어떤 기억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는 것이지?" 하고 한참 생각한다.

아마 논문을 쓰는 내내 이 질문이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

오늘 일기는 위의 평론에 인용된 박완서 선생님의 글 한 구절로 마무리.

"아직도 비록 신분증은 못 얻어 가졌지만 '나는 소설가다'라는 자각 하나로
제아무리 강한 세도가나 내로라하는 잘난 사람 앞에서도 힘 안들이고 기죽을 거 없이
당당할 수 있고, 제아무리 보잘것없는 밑바닥 못난이들하고 어울려도 내가 한치도 더 잘난 것
없으니 이 아니 유쾌한가." (<박완서 문학앨범> 143쪽)

아, 멋지다.
나의 내일도 저렇게 당당하고 겸손하길!



오늘은,
아침기도, 영어공부 클리어.
운동은 맨손체조 조금+30분쯤 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