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는 누구냐, 콸라룸푸르 공항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사진 속 저 '게스' 손목 시계는 뭄바이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멈췄다. 이렇게 혼잡한 도시는 처음 본다며 짜증 폭탄을 늘 품고 있었던 그 곳에서의 한 열흘간, 시계도 없이 지금이 몇시쯤인가 몽롱했던 거 같다. 저 '디카'는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내 주변에 몇 안되는 디카 소유주였던 ㅉ에게서 빌린 거고, 입고 있는 저 옷들은 인제 낡아서 못(안) 입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저 헤어스타일을 하고서 인도 여행을 하고, 바로 학교에 돌아와 석사논문을 썼다. 그 몇달동안 미용실에 한 번도 안갔는데, 초고를 다 쓰고서야 머리카락을 싹 잘라버렸다. 이천사년 초, 뭄바이 가던 길. 시계와 디카와 옷과 헤어스타일에 얽힌 사연들은 기억나는데, 칠년 전..
1. 오전 내내 학교 오기 싫어서 집에서 낑낑. 결국, 오늘 점심 약속이 있다는 걸 11시 넘어서야 발견, 후다다닥 왔음. 긴 직장생활과 출산, 육아 후 학교로 돌아온 J언니와 밥 먹고 차 한 잔 사서 빈 연구실에 마주 앉아 질적 연구와 인터뷰, 구술생애사와 박사논문, 공부와 육아, 외모와 다이어트에 관해 한 시간 반동안 이야기이야기이야기. 학교를 이렇게 오~래 다니면서, 아직도 이렇게 좋은 사람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는 거 분명 행운. 근데, '괴물'이 안될려면 남 이야기 많이 들어야지, 하고 어제 다짐했는데, 오늘도 내 얘기만 좀 많이 한 것 같기는 하고. 2. 체중이 적게 나가고 헤어스타일이며 옷이며 이쁘게 하고다녔던 시절엔 회사생활 포함 일상이 훨씬 편하고 좋았다는 J 언니의 회상...
첫 인도여행 삼주 내내 나는 무척 불편했다. 더럽고 공해 가득한 도시에서 '견뎠던' 초반 열흘도 그랬지만,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았던 시골 관광지에서의 시간도 불편했다. 여행 내내 마음과 몸이 다 불편했다. 두번째 인도여행 땐 몸 불편한 건 잘 모르겠고 마음만 좀 불편했다. 거기서 참 간만에 활짝 웃기도 하고 뭔가 치유한 부분도 있지만, 쨌든 불편하긴 했다. 오늘,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품었던 의문 "세상 모든 존재가 다 같이 행복해지는 길을 없는가?" 하는 부분을 공부하면서, 내 불편함의 실체를 알겠다. 불행해보이는 사람들, 가난하고 더럽고 구걸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마음, 그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가득했구나. 그들의 불행이 진짜 불행인가 의심해보지 않았고, 불행인 것으로 여겨지..
얼마 전 ㅅㅇ이랑 차 마시며 수다 떨던 중 그녀가 내가 물었다. "너 졸업하면 뭐 할거냐? 취직 자리는 있냐?" 나는, 물론, 취업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그러나, 그럴 듯 하지 않아도, 뭔가 내가 세상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매우 추상적으로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를 필드로 논문을 쓰고 있는 그녀가 되물었다. "나랑 인도네시아 가서 그들에게 잘 쓰이며 사는 건 어때?" 농담처럼 흘린 이야기지만, 이런 제안을 해주는 그녀가 왠지 고마웠다. 작년 겨울 인도에 갔을 때, ㅇㅈ 언니도 비슷한 제안을 했었다. "나랑 딱 삼년만 여기 있는 가난한 여자들 지원하는 일 한 번 해볼래?" 그 땐, 난 논문도 써야 하고, 삼년은 너무 길고... 등등 머뭇거리는 마음이 많았는데, 돌이켜보니 이 제안..
처음엔 낯설기만 했는데 여행의 마지막 즈음엔 이들 속에서 편안해졌다. 바라보고 눈 맞추어도 좋고 다른 곳을 바라봐도 좋고 서로 웃어줘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은. 올망졸망 앉은키를 맞추어 모여있는 이 사진이 편안한 것은 모두 같은 곳을 쳐다보지도 모두 같은 표정을 지어서도 아닐 것이다. 이즈음의 나는 혹은 우리는 혼자 있어도, 사람들이 꼭 나를 인정해주거나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하는 마음의 힘이 생겼기 때문일 거다. 최근에 들은 어떤 문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자주 봐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은 겁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이 세상 어딘가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습니까. 그냥 그를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마음, 그게 소유하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예전 같았음, 그런 사랑은..
설 연휴 때, 대구 가서 이모들을 만났는데, 우리들은 부엌 바닥에 앉아 한 목소리로 이런 넋두리를 했었다. "아, 일년은 지난 것 같이 길어. 이번 가을, 겨울은 너무 길어." 그 긴긴 시간들 동안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건, 돌아보니, 나를 혐오하는 일이었다. 자책과 후회, 뼈아픈 후회. 내가 그동안 자기 혐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걸, 인도에서 깨달았다, 걷고 절하고 명상하고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순간순간들 덕분에. 인도에서 나는 잘 씻지도 않고 거울도 안보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잤다, 그러면서도 많이 웃었다. 환하게 웃기,를 몇 달만에 다시 해봤다, 그리고 죄책감도 덜고 후회의 마음도 많이 버려두고 왔다. 자기 혐오의 다른 면은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욕망이다. 어리석고 못났고..
잘 다녀왔다, 이 주간 한번도 안 아팠고, 백번쯤 환하게 웃었던 것 같다,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먹는 건 뭐든 꿀맛이었고, 밤이 되면 피곤에 쩔어 곯아떨어질 수 있는 날들이었다, 좋았다. 그래도, 내내 나를 괴롭히던 건, 끔찍하게도, 엄마의 부재였다, 그 먼 곳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던 그 현실 감각은, 나를 갑자기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했고, 까닭없이 눈물이 쏟아져나오게도 했다. 아프긴해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면, 좋은 연습을 했다 쳐본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 마음 속에 한 가지 그림이 생겼는데, 한 오년 뒤, 조금 자란 딸을 데리고 그곳으로 다시 가는 그런. 힌디를 배우고 불가촉천민 여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줌마가 된 나. 학위 논문 쯤은 먼지 가득 쌓인 책장 어디쯤 꽂아두고, 온통 ..
- Total
- Today
- Yesterday
- Kensington Market
- 일상
- 일다
- 가을
- 맥주
- 엄마
- 교육사회학
- 열등감
- 일기
- CWSE
- 토론토의 겨울
- 봄비
- 인도
- 여행
- 인터뷰
- Toronto
- 감기
- 켄싱턴 마켓
- UofT
- 기억
- OISE
- 선련사
- 졸업
- 논문
- 교육대학교
- 토론토
- 박완서
- 봄
- 영어
- 아침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