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2일 화요일. 수업 3주차. 교실이 조금 데워진 느낌이 든다. 수업하러 가면서 느껴지는 내 마음도 긴장보다는 기대와 흥분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오늘은 지난 수업에 비하여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좀 짧아졌는데, 이 추세로 가면, 얼음이 녹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교실이 점점 더 시끌벅적 해지겠지, 싶다. 보울즈와 진티스의 논문 [교육과 인간발달]을 읽고 학생들이 올린 논평문을 피드백하고 채점해서 가져갔는데, 역시 점수를 명시해서 나눠주니 교실에 긴장감이 흐른다. 1점 차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경험이 너무 많아서, 어떤 점수라도 그것이 곧 능력의 척도인양 여겨지는 것,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냥 거기에 좀 둔감해지는 것. 이것이 점수를 명시해서 주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
2011년 3월 15일 화요일 솔직히, 토론식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에 좀 자부심이 있었다. 근데 오늘 수업을 해보니, 그동안 진행했던 수업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되도록 토론의 조직자(facilitator) 역할에 충실해보자 마음 먹은 이번 학기, 오늘은 그 시도의 첫 날. 동그랗게 둘러앉아 세미나식으로, 수업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건 여러가지 면에서 도전이었다. 교실의 침묵에 대한 어색함을 포함하여 선생이 이렇게 듣고만 있어도 되나 하는 의구심, 무엇보다 학생들의 이야기만으로 충실한 수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학생들과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았음에도 자꾸 내 의자가 특히 더 낮은 게 아닌가 느꼈다는 거다. 아, 강단에 서서 학생들의 주목을 받으며 이야기하..
토론토 생활 백오십삼일째 _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토론토에 와서 지내는 지난 다섯달 동안 나는 편안하고 가볍지 않았다. 아주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불편하고 무거웠던 시간들. 그런데 내가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어떤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때로 그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현재의 지구 질서의 주변부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섞인 자조감이기도 하고, 이 질서와 권력 구조에 대한 분노나 억울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로는 도무지 그려낼 수 없는 어떤 복잡한 심경들이 모종의 '불편함'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의 경험 어땠니? 너한테 좋았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토론토 생활 삼십삼일째 _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오늘부터 토론토는 공휴일 분위기에 들어간 것 같다. OISE도 1층 도서관만 개방하고 있고, 도서관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아침에 본 일기예보로는 어제보다 기온이 올라간 것 같아 조금 가볍게 입고 나갔는데, 썰렁한 학교에 도서관에 눈발까지 날리는 쌀쌀한 날씨라 종일 오돌돌 떨었다. 오후엔 여기 센터(CWSE)로 올 때 도움을 받았던 한국인 박사과정 선생님을 만났다. 토론토 페미니즘 서점(Toronto Women's Bookstore) 맞은 편 작은 까페에서 차 마시며 한 시간 정도 이런 저런 얘기 나눴다. 간만에 만난 한국 사람인데다, 여기 계신지 오래됐고, 여성학과 교육학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 많은 얘기 나누고 싶었는데 한 시간이 후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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